붓다의 호흡수련법
붓다가 태어난 곳은 북위 27도,동경82도의 카두마라에서 서쪽 20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룸비니 동산이다. 그곳에서 B.C250년 전에 아쇼카,즉 아육 왕이 세워놓은 큰 석주가 현재 남아있는데,거기에 기록되어 있기를 "이곳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하였다 " 라고 새겨져 있으므로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석가(釋迦)나 석존(釋尊)이란 한문으로 번역한 이름이고 인도어인 범어로는 샤카라고 한다.
샤카란 '태양의 후예' 라는 뜻으로 호기스런 종족임을 자부한 부족의 명칭이다.
붓다의 탄생 연대는 기원전 463년 혹은 483년 등 여러 설이 있다. 붓다는 부친 정반왕의 아들로 마야 부인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에 태어난 지 불과 7일만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이모의 손에서 자라났다. 비록 생모를 일찍 여의고 의모 밑에서 성장한 붓다지만, 항상 세심한 배려를 해준 부왕의 은총 아래 아무런 불편없이 자랐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가정 환경을 묘사한 기록이 있다."내가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는 대단히 행복하였다. 정원에는 여러 개의 연못이 있고,나의 방에는 언제나 남방 고원지방에서 생산되는 고급 전단향이 불타고 있었다. 내가 외출할 때는 비나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흰 일산이 가려워지고, 또 세 곳에 호화스런 별장이 있어 봄,여름,겨울 철마다 알맞게 지낼 수 있었으며, 여름의 지루한 우기에는 별장에서 궁녀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춤으로 향락의 나날을 보냈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와 같이 풍요롭고 흥겨운 안락과 희망에 찬 생활 속에서 장차 국왕이 되기 위해 그는 석가존의 관습에 따라 무기의 사용법과 궁술,검술을 비롯하여 마술에도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였다.
모든 면에 뛰어난 재질을 갖춘 위에 이목이 수려하고 기품이 당당한 그는 17세에 미모의 여인인 야소다라를 태자비로 맞이하였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인간의 아들로 모든 것을 고루 갗춘 상류 계급의 지식인으로 여성을 사랑하고 성의 쾌락도,인간관계의 괴로움도 고루 맛본 실제의 한 인간인 것이다.
불평도 불만도 모르고 유족한 환경에서 더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있던 그였지만, 그 역시 인간인지라 그 누구나 한번쯤 겪어야 하는 인생에의 회의, 즉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한 의문을 그도 그냥 스쳐갈 수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천 갈래 만 갈래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회의의 너울에 휘감기게 된 이후부터 그렇게 호화롭고 야망에 불타던 그는 즐거웠던 무술이나 사랑스럽던 아내와의 속삭임도 실증을 느끼게 되고 어딘지 모를 허전함과 아울러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이 속박된 삶에 권태라 할까 미지에 대한 불안감은 때때론 그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그중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다름아닌 사문유관상이다. 그 결과로 어렴프시나마 인간이란 늙고 병들어 결국 죽어 가는 유한한 보잘 것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서 지난날의 화려한 꿈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릐의나이 29세, 그동안 그의 꿈은 이상적인 제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갈고,다지고 닦고, 거듭 무술 연마에 정진하였던 것이다. 허나 천하를 호령하는 위대한 영웅이 된다하여도 어차피 이 몸은 죽어야 한다는 엄숙한 진리 앞에는 그도 별 힘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이 되느냐, 아니면 정신의 세계에 군림하는 성자가 되느냐 하는 두 갈래 길에서 방항하며 전전긍긍하던 그는 드디어 인간의 무상과 유한성을 깨닫고 자유분방한 젊음을 바쳐서 이룩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정신 세계의 왕자가 되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그 길은 바로 자기 한 사람만의 영광이나 행복이 아닌 인류 전체에 빛나는 광영이 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 노. 병. 사의 네 가지 괴로움의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는 현실적인 조그마한 희열이나 행복에 만족할 수 없는 자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붓다는 깊은 고뇌의 늪에서 솟아오르게 되었다.
그 누군가가 해결하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불가해한 수수께끼를 자기가 풀어야 하겠다는 그 굳은 의지를 존경하는 아버지의 힘으로도, 사랑하던 야소다라의 애정으로도 막을 길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부왕을 비롯하여 만민이 바라던 아들의 탄생을 보고 '아! 장애물이 태어났구나. 결박이 태어났구나' 하고 혼자 속삭이며 아들에게{나후라} 즉 계박 이라는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세속에 대한 모든 인연을 끊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심을 굳게 다지고 정든 가비라 성을 떠나는 싯달타 태자의 심정, 그 심정을 어떻게 쉽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생. 노. 병. 사의 번뇌를 해결할 수 있는 높은 정신적 경지를 터득코자 하는 그 열망 앞에는 모든 장애가 봄눈 녹듯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칠혹같은 야밤에 철옹성 같은 가비라 성을 뛰어넘어 다시 돌아올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출가의 험한 길을 재촉하며, 도중에서 옷을 갈아입고 말과 시자를 돌려보내고 동남을 향하여 수도승단이 있다는 마갈타 국으로 가게 되었다.
수행의 시작은 물론 요가였다
가라마와 라마부드라, 두 스승에게서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두 스승은 물론 주위의 동료들은 그의 수행의 빠름에 놀랐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인간에게 왜 고(苦)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스승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스승을 찾아 만나봤으나 모두 실망만 줄 뿐 시원한 해답을 들려주는 사람이 없어 실망만 더 컸다.
그리하여 생각 끝에 스스로 혼자 해결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깨닫고 홀로 고행의 수도를 시작하였다. 고행이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것 없이 육체와 마음을 끝없이 괴롭히는 것이었다.
경에 의하면 단식(斷息)은 물론 세찬 비라람과 참기 어려운 더위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몇 분씩 숨을 쉬지 않고 그 고통을 참아야 하고, 몹시 날카로운 가시덤풀 위에 눕기도 하고 해충이나 독충의 피해는 물론, 맹수의 급습 등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행을 체험하여야 했다.
식사란 하루에 한 끼 정도 7일이나 20일의 단식, 길게는 30일 이상의 단식도 수없이 되풀이했다. 몸에는 누더기와 짐승 가죽 등으로 겨우 살을 가리고 수염과 머리는 자랄대로 자라 사람의 형용은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뿐 아니고 몸에 기름칠을 하여 장작불에 지지고 물 속에 들어가 추위를 이기는 연습, 맹수가 우글거리는 숲속은 물론, 썩어빠진 시체와 해골이 뒹구는 공동 묘지에서 밤을 지새고, 아이들이 얼굴에 침을 뱉고 돌이나 진흙덩이나 나무막대로 귓구멍을 후벼도 성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와 같은 오랜 수행과 단식으로 몸에는 한 점의 살도 붙어있을 수 없고 오직 앙상한 뼈와 가죽 뿐으로 어깨는 낙타등과 같고 척추는 활과 같이 휘어지고 늑골은 부러졌으나, 오직 눈동자만은 깊은 샘속에 빛나는 별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과연 어떠한 사람이 이 이상의 혹독하고 처참한 고행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고행중의 고행은 숨을 오랫동안 정지시키는 단식이었다. 음식을 끊는 단식(斷食)은 4-5주 또는 그 이상 견딜 수 있으나 숨을 쉬지 않고 4-5분 정도를 견딘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고통이었다.
숨을 쉬지 않는 명상에서 입과 코의 호흡을 완전히 정지하면 체내에 갇힌 숨이 귀가 찢어지는 것과 같은 요란한 소리와 아픔을 주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의학적으로 풀어보면, 코와 입을 막고 호흡을 중단하면 기도압으로 심하게 압축된 기체는 코구멍과 귀구멍을 거쳐 내이(內耳)에 이르면 고막의 일부가 천공이 생기게 되고 내부 기체는 큰 압력으로 귀를 통하여 체외로 분출된다고 한다.
그것은 대장간의 풀무와 같이 요란한 소리를 냇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기록은 조금도 과장했거나 거짖이 아닌 사실임에 틀림없다. 만일 경우에 따라 귀마저 막아버린다면 격렬한 바람은 정수리에 충격을 주어 예리한 비수로 찌르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숨을 멈추는 단식(斷息)을 오래하면 때로는 체내의 바람이 깨진 사기파편으로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을 일으키고, 또 어떤 때는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도려내는 듯 배를 찌르고 불 속에 몸을 던진 듯 심한 고열을 일으킨다고 한다.
숨을 쉬지 않고 이와 같이 철저히 실행한 수행자가 있다는 기록은 아직 없다. 이와 같이 무모하고 무참한 단식(斷息)은 두 개의 내압을 높혀 뇌출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행은 문자 그대로 유사이래 그 누구도 실천해 본 사람이 없는 육체의 고통만을 위주로 한 무지막지한 고행법이라 하겠다.
그 같이 무모한 6년 간의 고행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을 때 그의 육신은 완전히 죽음의 직전이었고 빈사 상태에 가까웠다고할 수 있다.
부처님이 그와 같이 혹독하고 격렬한 고행 생활을 강행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생.노.병.사 네 가지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바램이었다.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고도의 정신적 경지를 얻겠다는 잘못된 그 당시의 많은 수도자들의 수행 방법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육체를 괴롭게 해본들 거기에는 어찌 생.노.병.사의 괴로움이 해소될 리가 없다. 이와 같은 고행은 완전히 도로에 그치고 말았다. 그와 같은 고행 방법이 그릇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은 6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였다. 말하자면 눈에게소리를 듣고 귀에게 빛을 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행위였음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심한 충격을 받거나 불같이 화를 냈을 때 역시 숨은 정지되고 머리는 몽롱해져 사리 분별을 옳게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뇌압이 갑자기 높아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와 같은 현상에서 어떻게 좋은 발상이 떠오를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봐도 아찔한 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같이 어려운 과정을 경험한 붓다는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즉 성광과 같은 예지가 머리를 스쳐갔다. 이번에는 내쉬는 숨, 들이마시는 숨을 마음껏 해보았다. 이것이 곧 '아나파나 . 사티' 인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시는 숨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도 마음껏 내쉬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그의 마음은 한없이 부풀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하였던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처음으로 맛보았던 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암흑이 햇빛처럼 밝게 보였다. '아나파나 사티' 야말로 정각을 이룬 계기가 되었노라" 고 하였다 때는 그의 나이 35세, 그 후 45년 간 아나파나 사티 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였다. 다른 경전에도 호흡을 하라. 호흡을 하면 유익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미루어 볼 때 호흡법에 철저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뒤에 말하겠지만 붓다의 호흡법은 수식(數息).상수(相隨).지(止).관(觀).환(還).정(淨)의 여섯 단계인 수식부터 제자들의 물음에 응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전심전력을 기울여 이룩해 놓은 그의 호흡법은 제자들로서는 도저히 따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90일 간이나 거뜬히 행하엿다고 기록되어 있다. 너무나 어려워 제자들이 쉽게 실행하지 못하는 듯하여 아나파나 사티 는 곧 개량되어 내쉬는 숨만을 길게 내쉬는 데 치중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대단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다. 출장식은 내쉬는 숨을 길게 하는 호흡법이다. 1.2.3하고 숫자를 헤아리는 수식이란 숨을 깊게 내쉬는 출장식으로 이끄는 교량 역할을 하는 아주 귀중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수식을 열심히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다음 단계인 상수로 넘어가기가어렵다. 그러므로 경에서 "수식을 얻으면 수식을 버리라" 고 하였다. 무슨 말인고 하면. 수식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말이다. 수식을 익혔으면 그것을 넘어서 다음 단계인 상수로 옮기라는 것이다. 상수야말로 암흑이 일출과 더불어 광명으로 돌변하는 호흡이다. 이 상수에서 지.관.환.정으로 멋지게 전개되어 가는 것이며, 이 과정을 자세히 말하는 것이{대안반수의경}의 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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