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8단계
(요가수트라 2장 29~45절 참조)
Ⅰ. 야마 (Yama : 금기(禁忌)사항) : 사회적 규범
1) 아힘사(Ahimsa) : 비폭력. 불살생.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는 삶은 모든 것에 대한 적의가 없다. 죽이거나, 파괴하거나, 발로차거나, 때리는 폭력이외에도 권력을 남용하여 남에게 해를 주거나, 타인을 무시하고 비웃거나, 험담하거나, 어려움을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것 모두 의식의 폭력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기본적인 생명(生命)의 영위를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게 되는 것은 자연적 질서의 범주에서 이해되어야하며 선택과 배려의 마음으로 기본적인 생명유지를 위한 식생활과 자기방어는 도덕적인 개념의 살생은 아닌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보다 높은 곳으로 진화하려는 본질적인 욕구가 있기에 수행자는 다른 생명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에너지를 보다 고등적인 일에 사용하고 승화시킨다면 살생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취미나 오락으로 다른 생명을 취하거나, 그것을 먹고 인간답지 못한 삶을 거듭하는데 쓰인다면 그 생명의 희생을 격하(格下)시키는 것이므로 살생의 업(業)을 받게 된다.
따라서 진화(進化)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그들을 대신하여 내가 나선 것은 그들을 무시하거나 죽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을 대변한 더 큰 희생으로의 길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요가(Yoga)는 모든 생명들과 화합하고 그것과 자신의 적의를 소멸시키고 상호 의존하는 수행인 것이다.
2) 사트야(Satya) : 진실(眞實). 성실(誠實).
거짓말과 거짓행이 없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말한다. 이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는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을 갖게 되며,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참됨 속에서 실천하는 세상의 주체자(主體者)가 된다. 언어(言語)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며 뜻을 전하는 힘을 가진다. 거짓말은 자기의 마음이 아닌 것을 전하기에
오해와 고통의 씨앗이 되는 것이며, 남을 속이는 것 이외에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어 결국 되돌아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은 수행의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뒷걸음질이고 앎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된다. 진실을 왜곡시키는 거짓말과
거짓행동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단순한 윤리적 차원에서의 금지 계율(戒律)이 아니며, 말의 순화와 수양이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 품성(品性)으로써 진실과 성실함은 지속적인 삶의 범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요가의 스승(Guru)들은 만약 거짓을 말해야 한다면 침묵(沈黙)을 지키라고 권한다. 침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각자의 판단에 따라
흐르고 소멸되기 때문에 가장 큰 긍정이고 부정이 된다. 또한 수행자의 진정한 모습은 침묵의 힘에 있다고 고전의 철학서들에 나타난
스승들은 공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3) 아스테야(Asteya) : 불투도(不偸盜).
남의 소유물을 훔치려는 어떠한 마음이나 수단을 행하지 않아야 함을 요가 수행자의 기본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리적 힘 또는
권력이나 재력(財力)등으로 남의 것을 자기(自己)것으로 취하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은 집중을 방해하며,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성취는 일시적인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손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그 결과를 받게 된다. 무조건 받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탐심(貪心)이며, 주고 받는
힘의 균형을 깨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함이다.
4)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 불탐심(不貪心).
요가 수행자는 자기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만큼만 원하고 취하라는 덕목으로써 탐욕의 종말은 거짓과 도둑질로 나타나기에 무릇 수행자는
겸손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이 나에게 호의를 갖는다하여 좋아하거나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정신적 탐욕이나, 재물을 모아서 쌓아
두려는 물질적 탐욕, 불로소득하려는 탐심도 죄업(罪業)이 되어 수행자가 벗어야하고 지우려하는 카르마(Karma)를 다시 쌓게 되는 헛
걸음이 되고 마는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그 마음의 무게에서 벗어나 가벼운 심신으로 진실한 자신을 성찰하며 성실한 태도로 꾸준히 자신을 닦고 실천하는 생활에서
필요한 만큼의 물질은 자연적으로 얻어진다.
5) 브라마차르야(Brahmacharya) : 정결(精潔)
고전(古典) 요가경전에서는 정력의 남용은 죽음을 부르고 정액을 몸속에 보존하면 몸에서 향기가 나고 모든 지력(知力)이 빛난다고 적고
있다. 요가 수행자의 절제하는 삶은 성적인 본능까지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누적된 힘을 구도와 지성의 개발에 쓰고 잘못된
것과 싸우는 용기와 지구력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Ⅱ. 니야마 (Nyama : 권장(勸獎)사항 : 개인적 규범
1) 사우차(Sauca) : 청정(淸靜)
① 육신(肉身)의 정화 - 물과 빛과 열과 공기(空氣)등의 자연을 이용하여 몸을 변화시키고 청소하며 식생활과 자세의 안정, 단식으로 육체를 정화한다.
② 정신(情神)의 정화 - 욕망, 증오, 탐욕, 오해, 허영, 무지, 질투, 망상, 태만(怠 慢)등의 마음을 순화(純化)시켜 참회하고
성화(聖化)시켜가는 것이다.
③ 언어(言語)의 정화 - 자기 내면의 표현이 말이다. 따라서 순화된 영혼에 맞는 말을 사용한다.
2) 산토샤(Santosa) : 만족(滿足)
생명유지에 필요한 것 이상을 구하지 않는 만족을 뜻한다. 불만보다는 매사(每事)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대상의 어두운 면 보다는 밝은 면을 깨닫고 즐겁게 사는 태도를 의미한다. 만족은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을 내지 않는 마음이다.
3) 타파스(Tapas) : 고행(苦行)
땀을 흘리는 열성으로 깨달음을 위해 이기적이 아닌 것에 스스로 택한 세속(世俗)에 대한 현실에 대한 즐거움을 버리는 길이다. 습관화되지 않은 것을 찾아 행하는 것이 고행이며, 자아완성을 위해 과거의 카르마(Karma)를 지우려는 노력이다. 심신(心身)에 새겨진 것이 강할수록
그것에 투자가 컸던 것이므로 그것을 바꿀 때 고통이 따르는 이치이다.
고통은 두 가지가 있다. 되살리기 위한 재생(再生)으로 인도하려는 고통이 있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고통이 있다. 갱생(更生)과 깨우침으로
인도하는 고통이 고행의 길이다. 고행으로 심신(心身)의 더러움이 정화되어 초자연적인 능력이 생긴다.
※ 고행의 종류
① 육체(肉體)의 고행 - 절제와 비폭력 자세정립이 기초이다.
② 언어(言語)의 고행 - 거짓말 하지 않고 진실한 말을 하는 것과 침묵이 기초이다.
③ 의식(意識)의 고행 -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여 진리에 이르려는 명상이 기초이다.
4) 스바디야야(Svadhyaya) : 학습(學習)
어제의 모든 것들은 오늘의 그것이 아니며 오늘은 새로운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계속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것이므로 이러한 학구(學究)가 끝나는 것이 죽음인 것이며 인간의 행복도 새로움을 경험하는 느낌인 것이다.
5) 이스바라-프라니다나(Isvara-pranidhana) : 염신(念神)
자기 내부적 신성(神聖)인 이스바라(Isvara : 요가의 자재신(自在神)를 명상한다. 자기의 이기적 마음을 비우고 더 높은 차원의 경지를
추구한다.
Ⅲ. 아사나(Asana) : 좌법(坐法). 자세(姿勢)
요가수트라(2-46)에서 좌법의 효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좌법은 안정되고 쾌적한 것이다」라고 할뿐 그 종류에 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단지 좌법의 효과를 요가수트라(2-47)과 요가수트라(2-48)에서 가볍게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즉 안정되고 쾌적함이
얻어지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노력들을 늦추고 마음을 끝이 없는 것(하늘 또는 참자기)에 두고 (合一)있음 때문이며, 이러한 것을
연습하면 상대적인 상황(춥고 더움 등등)에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인 산란심과 동요된 행동의 정지적
거부이며, 그것을 통해서 상대적 요소의 어느 한 쪽에 대한 편중으로 야기되는 괴로움(苦)을 벗어나고 전체성을 열어 삶의 편향성으로부터
초월한다는 것이다.
요가수트라(3-46)에서는 「육체적 완전함은 아름다운 모습과 우아함과 힘셈과 깨지지 않는 굳셈이다」라고 하여 육체적 건강과 부분에
치우침이 없는 완전함을 요가행자들이 확립하도록 암시하여 육체요가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
Ⅳ. 프라나야마(Pranayama) : 숨 고르기. 기운(氣運) 다스리기
요가수트라(2-49)가 호흡법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좌법에서 숨을 멈추는 것이 조식이다」라 하고 요가수트라(2-50)에서는 조식의
진행과정을 설하고 있다. 즉 「조식은 호식(呼息)과 흡식(吸息)과 지식(止息:Kumbhaka)으로 되어 있고 장소, 시간, 수(數)에 의해 조절되어
길고 미세하게 된다」이다. 여기에서 장소에 의한 조절이란 전신에서 볼 때 어떤 곳의 느낌에 따라서 조절함이고, 시간에 의한 조절이란
숨쉬고 참는 시간적인 조절이며, 수에 따른 조절이란 숨쉬는 횟수에 따른 조절이다. 이러한 조식이 이루어지면 호흡은 점차 더욱 길어지고
미세하게 가늘어 진다는 것이다.
요가수트라(2-51)부터 요가수트라(2-53)까지가 조식의 효과이다. 즉 조식이 수련되면 내부와 외부가 합일하여 내외의 대상에 대한 구분이
없어지는 초월이 이룩되고 참된 이해의 능력을 억압하고 있는 집착의 번뇌가 소멸되며 정신집중이 잘된다.
「호흡으로 마음이 깨끗해진다」요가수트라(1-34).
Ⅴ. 프라탸하라(Pratyahara) : 육체적인 감각의 제어(制御).
요가수트라(2-54)와 요가수트라(2-55)가 제감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감각기관이 각각의 대상과 결합하지 않게 함으로써 본래의 마음상태와 연결된다. 따라서 감각기관들이 자기마음대로 순종하는 힘이 생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16세기경에 나온 게란디-상히타라는 요가경전의 제 4장 1부터 5까지가 제감법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감각·시각·청각·후각·미각 등의 5감각을 참된 자기의 지배하에 두려는
수련법으로 외부대상에 끌리는 마음을 회수하고 칭찬이나 비난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을 원위치 시키고 좋거나 나쁜 모든 냄새로부터
일어나는 마음을 회수하여 맛으로 인한 마음을 되돌려 참된 자기의 지배 하에 두도록 되어 있다.
Pratyahara라는 말은 「되돌려 온다」의 뜻이며 본래의 마음 즉, 참된 자기와의 직관적 연결을 맺으려는 수련이다. 제감을 통해 사유(思惟)의 기능의 반조(反照)가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감각을 내면으로 되돌려 참된 자기에게 되비추어 봄으로써 모든 사실들을 알아내는
능력을 얻으려는 접근이다.
요가수트라에는 별도의 수련방법이 기록되고 있지 않으나 호흡수련, 명상수련, 좌법과 여러계행 등이 모두 제감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된다. 제감이 육체적 수련으로 보이지만 응념과 동시에 일어나는 심리적 수행의 시작이다.
금계와 권계의 윤리적이고 구도적인 단계와 체위와 조식과 제감의 육체적 수련 단계들은 모두 다음 단계인 심리적 수련(응념·정념·삼매)의
준비과정이다.
Ⅵ. 다라나(Dharana) : 정신의 집중(集中)
요가수트라(3-1)에서 「응념」이란 마음을 한곳에 매는 것이다」라고 한다. 요가수트라
(1-32)에서는 「마음의 산란함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하여 응념의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응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요가
수트라(3-16에서 52까지)의 초능력 개발에서 총제하는 대상은 모두 응념의 대상이 된다.
요가브하샤(3-1)에 의하면 「응념은 자신의 배꼽·심장·코끝이나 그 밖의 외부대상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구심적 정신집중이다.
Ⅶ. 디아나(Dhyana) : 집중이 지속된 의식. 정려(靜慮). 선정(禪定). 명상(瞑想)
요가수트라(3-2)는 「정려는 응념되고 대상에 의식작용이 한결 같다」이다. 정려의 대상은
응념의 대상과 같지만 그 심리 상태는 응념과 정반대이다. 그 대상에 대한 의식의 작용이 확대
되어 가는 생각의 흐름이다. 즉, 정려는 구심적인 응념에 반대되는 원심적인 사고의 흐름이다.
요가수트라(2-11)은 「번뇌는 정려에 의하여 제거될 수 있다」이다. 정려를 선정(禪定)이라고
도 하는데 이것은 Dhyana를 한자로 선나(禪那)로 번역하였다가 나(那)는 없어지고 선(禪)으로
바뀌었으며 선은 일본에 의해 유럽에 소개될 때 젠(Zen)으로 바뀌었다. 정(定)은 상대성의 합일
(合一)을 말하며 선과 정이 모여서 선정(禪定)이 되었다. 따라서 정려가 그 근원이다.
정려는 다각적인 이해를 하나의 대상을 중심으로 일으키는 의식확장명상이다. 서구적이 명상은
대상에 대한 느낌과 경험의 분석 또는 정돈을 통해 그 가치정도를 파악하는 수준이지만, 요가의 명상(Dhyana)은
그러한 것들을 동시적으로 포함하면서 종국에는 그 대상의 본질로 침투하여 주관
적인 생각은 없어져 버리고 대상에 동화되므로 보이지 않는 면까지도 직관으로 정확히 감지하여
알게 된다.
요가명상의 특징은 기초단계인 접근이 지식을 넓히거나 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고 심작용을
억제하는 심리현상이다. 그러한 이유는 편견이나 오류에 의한 잘못된 이해의 경험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일반적 모순을 제거하려는 적극적인 수행의 접근 때문이다. 그 대상에 함축되어 있는
자연의 진리를 보다 바르게 감지하여 이해하려는 직관의 인식을 유도하는 수행이 요가이다. 따라서
심작용의 지멸은 수단인 것이지 요가의 목표일 수 없다. 요가의 목표는 삼매를 통해 얻어지는 참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Ⅷ. 사마디(Samadhi) : 삼매(三昧). 자의식과 우주의식이 육체에서 혼연일체(渾然一體)된 무심무상(無心無想)의 경지
요가수트라(3-3)은 「삼매는 정려의 대상만 마음속에 빛나고 그 자신은 없어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이다.
객체만 있고 주체는 사라진 상태인데 이것은 자기 마음에 대상이 주는 사실성만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무의식상태가 아니라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하나로 묶여 있는 합일상태가 삼매이다.
이기적으로 집착된 자기 마음의 작용 즉, 편협적인 체험에 의한 편견적인 마음의 작용(저것을 소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치 높은 것이구나, 무섭다, 아름답다....)은 사라져 버리고 그 대상의 사실성에 몰입되어 그 대상의 성질만 빛나고 있는
경지를 삼매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다운 심작용이 없는 깨끗한 자기에게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진리가 자리
잡은 상태이다. 이때는 참된 자아(Purusa)가 븟디(統覺)의 사유기능을 통해서 직관적인 앎을 주므로 그 대상의 진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자극에 대한 무감각 상태이나 최면적인 마비상태와는 다르며 보다 진실하고 완전하게 그 대상을 안다.
비록 요가수행으로 참자아를 깨달아 해탈하고 신인합일(神人合一)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목표적 수행은 자연에
대한 다채로운 인식의 종합을 실현해가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전체성(全體性)의 개화(開花)를 도출시키는 성장이 삼매의 수련효과이다.
응념과 정려와 삼매의 관계는 거의 연속적인 전개이므로 나누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셋을 합하여 총제(總制 : Samyama)라고 한다.
함께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려의 시작에서부터는 주관과 객관의 상대적 대립과 상응이 반복되며 정려가 깊어지면 정(定)에 이른다.
즉 선정(禪定)이 된다. 이때부터가 곧 삼매이다.
즉, 주객의 대립이 아닌 합일에 이른 것이 삼매다. 이때에는 반성적사고(反省的思考)가 사라지고 직관(直觀 : Anschauung)이 일어난다.
직관은 일반적으로 추리, 판단, 사고작용을 첨가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작용이다. 판단, 추리, 사고 등은 주관과 객관이 서로 대립하는 반성적의식(反省的意識)으로 성립되지만 직관은 주객의 결합 즉, 주객의 미분화(未分化)된 상태의 의식으로서 자기 자신의 주관은 없고
객관의 의식만 있는 상태를 뜻한다. 대립을 초월한 합일의 전체적 열림에서 감지되는 인식방법이 직관이다. 사고가 분석적, 추리적,
이론적이라면 직관은 종합적, 구체적, 실천적이다.
(요가수트라 2장 29~45절 참조)
Ⅰ. 야마 (Yama : 금기(禁忌)사항) : 사회적 규범
1) 아힘사(Ahimsa) : 비폭력. 불살생.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는 삶은 모든 것에 대한 적의가 없다. 죽이거나, 파괴하거나, 발로차거나, 때리는 폭력이외에도 권력을 남용하여 남에게 해를 주거나, 타인을 무시하고 비웃거나, 험담하거나, 어려움을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것 모두 의식의 폭력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기본적인 생명(生命)의 영위를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게 되는 것은 자연적 질서의 범주에서 이해되어야하며 선택과 배려의 마음으로 기본적인 생명유지를 위한 식생활과 자기방어는 도덕적인 개념의 살생은 아닌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보다 높은 곳으로 진화하려는 본질적인 욕구가 있기에 수행자는 다른 생명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에너지를 보다 고등적인 일에 사용하고 승화시킨다면 살생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취미나 오락으로 다른 생명을 취하거나, 그것을 먹고 인간답지 못한 삶을 거듭하는데 쓰인다면 그 생명의 희생을 격하(格下)시키는 것이므로 살생의 업(業)을 받게 된다.
따라서 진화(進化)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그들을 대신하여 내가 나선 것은 그들을 무시하거나 죽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을 대변한 더 큰 희생으로의 길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요가(Yoga)는 모든 생명들과 화합하고 그것과 자신의 적의를 소멸시키고 상호 의존하는 수행인 것이다.
2) 사트야(Satya) : 진실(眞實). 성실(誠實).
거짓말과 거짓행이 없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말한다. 이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는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을 갖게 되며,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참됨 속에서 실천하는 세상의 주체자(主體者)가 된다. 언어(言語)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며 뜻을 전하는 힘을 가진다. 거짓말은 자기의 마음이 아닌 것을 전하기에
오해와 고통의 씨앗이 되는 것이며, 남을 속이는 것 이외에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어 결국 되돌아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은 수행의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뒷걸음질이고 앎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된다. 진실을 왜곡시키는 거짓말과
거짓행동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단순한 윤리적 차원에서의 금지 계율(戒律)이 아니며, 말의 순화와 수양이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 품성(品性)으로써 진실과 성실함은 지속적인 삶의 범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요가의 스승(Guru)들은 만약 거짓을 말해야 한다면 침묵(沈黙)을 지키라고 권한다. 침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각자의 판단에 따라
흐르고 소멸되기 때문에 가장 큰 긍정이고 부정이 된다. 또한 수행자의 진정한 모습은 침묵의 힘에 있다고 고전의 철학서들에 나타난
스승들은 공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3) 아스테야(Asteya) : 불투도(不偸盜).
남의 소유물을 훔치려는 어떠한 마음이나 수단을 행하지 않아야 함을 요가 수행자의 기본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리적 힘 또는
권력이나 재력(財力)등으로 남의 것을 자기(自己)것으로 취하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은 집중을 방해하며,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성취는 일시적인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손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그 결과를 받게 된다. 무조건 받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탐심(貪心)이며, 주고 받는
힘의 균형을 깨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함이다.
4)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 불탐심(不貪心).
요가 수행자는 자기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만큼만 원하고 취하라는 덕목으로써 탐욕의 종말은 거짓과 도둑질로 나타나기에 무릇 수행자는
겸손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이 나에게 호의를 갖는다하여 좋아하거나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정신적 탐욕이나, 재물을 모아서 쌓아
두려는 물질적 탐욕, 불로소득하려는 탐심도 죄업(罪業)이 되어 수행자가 벗어야하고 지우려하는 카르마(Karma)를 다시 쌓게 되는 헛
걸음이 되고 마는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그 마음의 무게에서 벗어나 가벼운 심신으로 진실한 자신을 성찰하며 성실한 태도로 꾸준히 자신을 닦고 실천하는 생활에서
필요한 만큼의 물질은 자연적으로 얻어진다.
5) 브라마차르야(Brahmacharya) : 정결(精潔)
고전(古典) 요가경전에서는 정력의 남용은 죽음을 부르고 정액을 몸속에 보존하면 몸에서 향기가 나고 모든 지력(知力)이 빛난다고 적고
있다. 요가 수행자의 절제하는 삶은 성적인 본능까지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누적된 힘을 구도와 지성의 개발에 쓰고 잘못된
것과 싸우는 용기와 지구력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Ⅱ. 니야마 (Nyama : 권장(勸獎)사항 : 개인적 규범
1) 사우차(Sauca) : 청정(淸靜)
① 육신(肉身)의 정화 - 물과 빛과 열과 공기(空氣)등의 자연을 이용하여 몸을 변화시키고 청소하며 식생활과 자세의 안정, 단식으로 육체를 정화한다.
② 정신(情神)의 정화 - 욕망, 증오, 탐욕, 오해, 허영, 무지, 질투, 망상, 태만(怠 慢)등의 마음을 순화(純化)시켜 참회하고
성화(聖化)시켜가는 것이다.
③ 언어(言語)의 정화 - 자기 내면의 표현이 말이다. 따라서 순화된 영혼에 맞는 말을 사용한다.
2) 산토샤(Santosa) : 만족(滿足)
생명유지에 필요한 것 이상을 구하지 않는 만족을 뜻한다. 불만보다는 매사(每事)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대상의 어두운 면 보다는 밝은 면을 깨닫고 즐겁게 사는 태도를 의미한다. 만족은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을 내지 않는 마음이다.
3) 타파스(Tapas) : 고행(苦行)
땀을 흘리는 열성으로 깨달음을 위해 이기적이 아닌 것에 스스로 택한 세속(世俗)에 대한 현실에 대한 즐거움을 버리는 길이다. 습관화되지 않은 것을 찾아 행하는 것이 고행이며, 자아완성을 위해 과거의 카르마(Karma)를 지우려는 노력이다. 심신(心身)에 새겨진 것이 강할수록
그것에 투자가 컸던 것이므로 그것을 바꿀 때 고통이 따르는 이치이다.
고통은 두 가지가 있다. 되살리기 위한 재생(再生)으로 인도하려는 고통이 있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고통이 있다. 갱생(更生)과 깨우침으로
인도하는 고통이 고행의 길이다. 고행으로 심신(心身)의 더러움이 정화되어 초자연적인 능력이 생긴다.
※ 고행의 종류
① 육체(肉體)의 고행 - 절제와 비폭력 자세정립이 기초이다.
② 언어(言語)의 고행 - 거짓말 하지 않고 진실한 말을 하는 것과 침묵이 기초이다.
③ 의식(意識)의 고행 -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여 진리에 이르려는 명상이 기초이다.
4) 스바디야야(Svadhyaya) : 학습(學習)
어제의 모든 것들은 오늘의 그것이 아니며 오늘은 새로운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계속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것이므로 이러한 학구(學究)가 끝나는 것이 죽음인 것이며 인간의 행복도 새로움을 경험하는 느낌인 것이다.
5) 이스바라-프라니다나(Isvara-pranidhana) : 염신(念神)
자기 내부적 신성(神聖)인 이스바라(Isvara : 요가의 자재신(自在神)를 명상한다. 자기의 이기적 마음을 비우고 더 높은 차원의 경지를
추구한다.
Ⅲ. 아사나(Asana) : 좌법(坐法). 자세(姿勢)
요가수트라(2-46)에서 좌법의 효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좌법은 안정되고 쾌적한 것이다」라고 할뿐 그 종류에 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단지 좌법의 효과를 요가수트라(2-47)과 요가수트라(2-48)에서 가볍게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즉 안정되고 쾌적함이
얻어지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노력들을 늦추고 마음을 끝이 없는 것(하늘 또는 참자기)에 두고 (合一)있음 때문이며, 이러한 것을
연습하면 상대적인 상황(춥고 더움 등등)에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인 산란심과 동요된 행동의 정지적
거부이며, 그것을 통해서 상대적 요소의 어느 한 쪽에 대한 편중으로 야기되는 괴로움(苦)을 벗어나고 전체성을 열어 삶의 편향성으로부터
초월한다는 것이다.
요가수트라(3-46)에서는 「육체적 완전함은 아름다운 모습과 우아함과 힘셈과 깨지지 않는 굳셈이다」라고 하여 육체적 건강과 부분에
치우침이 없는 완전함을 요가행자들이 확립하도록 암시하여 육체요가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
Ⅳ. 프라나야마(Pranayama) : 숨 고르기. 기운(氣運) 다스리기
요가수트라(2-49)가 호흡법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좌법에서 숨을 멈추는 것이 조식이다」라 하고 요가수트라(2-50)에서는 조식의
진행과정을 설하고 있다. 즉 「조식은 호식(呼息)과 흡식(吸息)과 지식(止息:Kumbhaka)으로 되어 있고 장소, 시간, 수(數)에 의해 조절되어
길고 미세하게 된다」이다. 여기에서 장소에 의한 조절이란 전신에서 볼 때 어떤 곳의 느낌에 따라서 조절함이고, 시간에 의한 조절이란
숨쉬고 참는 시간적인 조절이며, 수에 따른 조절이란 숨쉬는 횟수에 따른 조절이다. 이러한 조식이 이루어지면 호흡은 점차 더욱 길어지고
미세하게 가늘어 진다는 것이다.
요가수트라(2-51)부터 요가수트라(2-53)까지가 조식의 효과이다. 즉 조식이 수련되면 내부와 외부가 합일하여 내외의 대상에 대한 구분이
없어지는 초월이 이룩되고 참된 이해의 능력을 억압하고 있는 집착의 번뇌가 소멸되며 정신집중이 잘된다.
「호흡으로 마음이 깨끗해진다」요가수트라(1-34).
Ⅴ. 프라탸하라(Pratyahara) : 육체적인 감각의 제어(制御).
요가수트라(2-54)와 요가수트라(2-55)가 제감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감각기관이 각각의 대상과 결합하지 않게 함으로써 본래의 마음상태와 연결된다. 따라서 감각기관들이 자기마음대로 순종하는 힘이 생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16세기경에 나온 게란디-상히타라는 요가경전의 제 4장 1부터 5까지가 제감법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감각·시각·청각·후각·미각 등의 5감각을 참된 자기의 지배하에 두려는
수련법으로 외부대상에 끌리는 마음을 회수하고 칭찬이나 비난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을 원위치 시키고 좋거나 나쁜 모든 냄새로부터
일어나는 마음을 회수하여 맛으로 인한 마음을 되돌려 참된 자기의 지배 하에 두도록 되어 있다.
Pratyahara라는 말은 「되돌려 온다」의 뜻이며 본래의 마음 즉, 참된 자기와의 직관적 연결을 맺으려는 수련이다. 제감을 통해 사유(思惟)의 기능의 반조(反照)가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감각을 내면으로 되돌려 참된 자기에게 되비추어 봄으로써 모든 사실들을 알아내는
능력을 얻으려는 접근이다.
요가수트라에는 별도의 수련방법이 기록되고 있지 않으나 호흡수련, 명상수련, 좌법과 여러계행 등이 모두 제감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된다. 제감이 육체적 수련으로 보이지만 응념과 동시에 일어나는 심리적 수행의 시작이다.
금계와 권계의 윤리적이고 구도적인 단계와 체위와 조식과 제감의 육체적 수련 단계들은 모두 다음 단계인 심리적 수련(응념·정념·삼매)의
준비과정이다.
Ⅵ. 다라나(Dharana) : 정신의 집중(集中)
요가수트라(3-1)에서 「응념」이란 마음을 한곳에 매는 것이다」라고 한다. 요가수트라
(1-32)에서는 「마음의 산란함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하여 응념의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응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요가
수트라(3-16에서 52까지)의 초능력 개발에서 총제하는 대상은 모두 응념의 대상이 된다.
요가브하샤(3-1)에 의하면 「응념은 자신의 배꼽·심장·코끝이나 그 밖의 외부대상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구심적 정신집중이다.
Ⅶ. 디아나(Dhyana) : 집중이 지속된 의식. 정려(靜慮). 선정(禪定). 명상(瞑想)
요가수트라(3-2)는 「정려는 응념되고 대상에 의식작용이 한결 같다」이다. 정려의 대상은
응념의 대상과 같지만 그 심리 상태는 응념과 정반대이다. 그 대상에 대한 의식의 작용이 확대
되어 가는 생각의 흐름이다. 즉, 정려는 구심적인 응념에 반대되는 원심적인 사고의 흐름이다.
요가수트라(2-11)은 「번뇌는 정려에 의하여 제거될 수 있다」이다. 정려를 선정(禪定)이라고
도 하는데 이것은 Dhyana를 한자로 선나(禪那)로 번역하였다가 나(那)는 없어지고 선(禪)으로
바뀌었으며 선은 일본에 의해 유럽에 소개될 때 젠(Zen)으로 바뀌었다. 정(定)은 상대성의 합일
(合一)을 말하며 선과 정이 모여서 선정(禪定)이 되었다. 따라서 정려가 그 근원이다.
정려는 다각적인 이해를 하나의 대상을 중심으로 일으키는 의식확장명상이다. 서구적이 명상은
대상에 대한 느낌과 경험의 분석 또는 정돈을 통해 그 가치정도를 파악하는 수준이지만, 요가의 명상(Dhyana)은
그러한 것들을 동시적으로 포함하면서 종국에는 그 대상의 본질로 침투하여 주관
적인 생각은 없어져 버리고 대상에 동화되므로 보이지 않는 면까지도 직관으로 정확히 감지하여
알게 된다.
요가명상의 특징은 기초단계인 접근이 지식을 넓히거나 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고 심작용을
억제하는 심리현상이다. 그러한 이유는 편견이나 오류에 의한 잘못된 이해의 경험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일반적 모순을 제거하려는 적극적인 수행의 접근 때문이다. 그 대상에 함축되어 있는
자연의 진리를 보다 바르게 감지하여 이해하려는 직관의 인식을 유도하는 수행이 요가이다. 따라서
심작용의 지멸은 수단인 것이지 요가의 목표일 수 없다. 요가의 목표는 삼매를 통해 얻어지는 참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Ⅷ. 사마디(Samadhi) : 삼매(三昧). 자의식과 우주의식이 육체에서 혼연일체(渾然一體)된 무심무상(無心無想)의 경지
요가수트라(3-3)은 「삼매는 정려의 대상만 마음속에 빛나고 그 자신은 없어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이다.
객체만 있고 주체는 사라진 상태인데 이것은 자기 마음에 대상이 주는 사실성만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무의식상태가 아니라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하나로 묶여 있는 합일상태가 삼매이다.
이기적으로 집착된 자기 마음의 작용 즉, 편협적인 체험에 의한 편견적인 마음의 작용(저것을 소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치 높은 것이구나, 무섭다, 아름답다....)은 사라져 버리고 그 대상의 사실성에 몰입되어 그 대상의 성질만 빛나고 있는
경지를 삼매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다운 심작용이 없는 깨끗한 자기에게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진리가 자리
잡은 상태이다. 이때는 참된 자아(Purusa)가 븟디(統覺)의 사유기능을 통해서 직관적인 앎을 주므로 그 대상의 진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자극에 대한 무감각 상태이나 최면적인 마비상태와는 다르며 보다 진실하고 완전하게 그 대상을 안다.
비록 요가수행으로 참자아를 깨달아 해탈하고 신인합일(神人合一)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목표적 수행은 자연에
대한 다채로운 인식의 종합을 실현해가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전체성(全體性)의 개화(開花)를 도출시키는 성장이 삼매의 수련효과이다.
응념과 정려와 삼매의 관계는 거의 연속적인 전개이므로 나누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셋을 합하여 총제(總制 : Samyama)라고 한다.
함께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려의 시작에서부터는 주관과 객관의 상대적 대립과 상응이 반복되며 정려가 깊어지면 정(定)에 이른다.
즉 선정(禪定)이 된다. 이때부터가 곧 삼매이다.
즉, 주객의 대립이 아닌 합일에 이른 것이 삼매다. 이때에는 반성적사고(反省的思考)가 사라지고 직관(直觀 : Anschauung)이 일어난다.
직관은 일반적으로 추리, 판단, 사고작용을 첨가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작용이다. 판단, 추리, 사고 등은 주관과 객관이 서로 대립하는 반성적의식(反省的意識)으로 성립되지만 직관은 주객의 결합 즉, 주객의 미분화(未分化)된 상태의 의식으로서 자기 자신의 주관은 없고
객관의 의식만 있는 상태를 뜻한다. 대립을 초월한 합일의 전체적 열림에서 감지되는 인식방법이 직관이다. 사고가 분석적, 추리적,
이론적이라면 직관은 종합적, 구체적, 실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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