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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성전의 성립

파르헤지아 2009. 4. 29. 20:04

초기불교 성전의 성립

 

후지타 코타츠 외/권오민 옮김

이 글은 후지타 코타츠 외/권오민 옮김,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서울: 민족사, 1989), pp.201-213에 나오는 것이다.

팔리 성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제일결집(第一結集)

팔리어 <율장(律藏)> ‘소품(小品)’에 의하면 석존이 입멸한 직후 마하캇사파(大迦葉)의 제언에 따라 500 명의 출가 수행자(比丘)들이 라자가하에 모여 우안거(雨安居)를 행하며 석존의 가르침을 결집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흔히 제일결집(第一結集)이라고 한다.

‘결집’(Samgiti)이란 석존의 교설을 ‘함께 암송하는 것(合誦)’의 의미로 성전을 편집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는 마하캇사파가 회의를 주재하고 우팔리가 ‘율(律)’ (vinaya)을 아난다가 ‘법(法)’ (dhamma, dharma)을 송출(誦出)하고 참가자 전원이 석존의 교설로 확인하였다고 한다. 이 제1결집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같은 형태의 전설이 여러 부파의 문헌에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필시 어떠한 형태로든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제1결집에서 송출되었다고 하는 율(律)과 법(法)의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제1결집을 전하고 있는 모든 전설(傳說)에서는 각각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지만 모두 자기 부파의 ‘율장(律藏)’과 경장(經藏)의 내용에 대한 것이어서 당시의 사실(史實)을 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제1결집의 율과 법의 내용이 훗날의 <율장>과 <경장>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는 참고가 될지 모르나 그 발전의 과정을 명확하게 더듬어 보는 것은 실제로 곤란한 문제이다.

율장(律藏)과 경장(經藏)의 이전 단계

근래 연구된 바에 의하면 초기불교 성전으로서 <율장>과 <경장>이 편집되기 전에 이미 복잡한 성립사가 있었다고 한다. 먼저 <율장>에 대해 살펴보면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의 조문을 모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atimokkha, Pratimoksa)가 비교적 일찍 정리되어 ‘경(經)’(sutta, sutra)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점차 그것의 설명 해석인 ‘경분별(經分別)’이 성립하게 된다. 또 출가교단의 운영에 대한 제반 규칙인 ‘건도부(建度部)’의 주요부분도 비교적 오래전에 성립하였다. 불멸(佛滅) 100년(또는 110년) 베살리에서 개최된 제2결집은 계율상 10 가지 문제(이른바 十事)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는데, 이때까지 바라제목차와 건도부의 원형적인 형태가 갖추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반해 <경장>은 석존(및 그 제자)이 그때그때 언급한 설법을 집성한 것으로, 현재와 같은 형태로 종합되기 이전에 먼저 제자들에 의해 기억하기 편리한 형태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즉 석존이 자신의 교설을 필사(筆寫)하였다고 하는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교설은 모두 그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며, 그것은 모두 개략적인 줄거리의 형태로서 정리된 것이다.

이러한 개관의 형태는 싯구라든가 짧은 산문과 같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전승되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조직적인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구분교(九分敎)’ 혹은 ‘십이분교(十二分敎)’라고 하는 분류이다. 구분교라고 하는 것은 팔리어 성전에 의하면,

⑴ 숫타 sutta (‘契經’, 석존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정리한 산문)
⑵ 겟야 geyya (‘應頌’ 또는 ‘重頌’, 숫타의 내용을 詩로 반복하는 형식)
⑶ 벳야카라나 veyyakarana (‘記說’, ‘授記’, 간결한 문답 형식)
⑷ 가타 gatha (‘偈頌’, 詩句의 형식)
⑸ 우다나 udana (‘自說’ 또는 ‘感興語’, 석존이 감응적으로 설한 詩)
⑹ 이티붓타카 itivuttaka (‘如是語’, 켓야의 특수한 형식)
⑺ 자타카 jataka (‘本生’, 석존의 전생 이야기)
⑻ 베달라 vedalla (‘毘陀羅’, ‘方廣’, 중층적인 교리문답)
⑼ 앗부타 담마 abbhuta-dhamma (‘未曾有法’, 희유한 공덕 · 기적에 관한 교설)

의 아홉 가지를 말하며, 북전(北傳)의 문헌(산스크리트어 및 한역의 經論)에만 나오는 십이분교는 구분교에다 다음의 세 가지를 더한 것이다.
⑽ 니다나 nidana (‘因緣’, 계율 조문의 성립 사정에 관한 이야기)
⑾ 아바다나 avadana (‘譬喩’, 불제자에 대한 과거세 이야기)
⑿ 우파데샤 upadesa (‘논의(論議)’, 교리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

여기서 구분교와 십이분교 중 보통 구분교가 더 오래된 분류라고 보며, 또 구분교 가운데에서도 처음 다섯 가지 형식이 뒤의 네 가지 형식보다도 오래된 것이라고 본다. 구분교와 십이분교는 ‘율’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만 주로 ‘법’에 관한 분류이며, ‘경장’의 오부(五部), 사아함(四阿含)의 분류보다도 더 오래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만 구분교와 십이분교가 오부(五部), 사아함(四阿含)보다 먼저 성립하였다고는 해도 구체적인 경전의 분류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요컨대 이러한 분류는 불제자들이 정리한 석존 교설의 줄거리를 형식적으로 정리하여 기억하기 쉽게 하려는 동시에 성전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구분교나 십이분교처럼 간결하고도 개략적인 형식만으로는 석존이 실제로 설법할 때의 상황이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갖춘 형식의 경전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또한 구분교나 십이분교의 분류에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경전의 작성이 요구되었다. 이렇게 하여 점차 현재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경전이 형성되었고, 이들 다수의 경전을 새롭게 분류하고 집성한 ‘경장’이 성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성전(聖典)

‘율장’과 ‘경장’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일반적으로 그 일단의 원형이 이루어진 것은 석존 입멸 후 100년 무렵으로 생각된다. 필시 입멸 직후 제1결집 무렵부터 석존의 교설 전체를 정리하고 편집하려는 관심이 높아져, 그 후 약 100년 사이에 ‘율’에 관한 것은 ‘율장’으로 집성되고 ‘법’에 관한 것은 ‘경장’으로 집성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기서 ‘장(藏, pitaka)’이라고 하는 것은 ‘바구니’라고 하는 의미로서 각각의 율(律)이나 법(法)의 수록을 의미한다.

여기서 석존 입멸 후 100년 무렵이라고 하는 것은 초기의 불교교단이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의 두 가지 부파로 분열(이른바 根本分裂)한 연대인데, 그 후 이 두 파는 더욱 세분되어 이른바 소승이십부(小乘二十部)라고 하는 많은 부파로 분열(이른바 枝末分裂)하였다. 초기교단이 부파분열함에 따라 초기 성전인 ‘율장’과 ‘경장’도 각각의 부파교단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각 부파에 의한 전승은 자파(自派) 성전의 정비나 고착을 촉진시킨 반면 성전의 증광(增廣)이나 개변(改變)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기도 하였다. 성전의 용어도 동일한 것이 아니라 부파에 따라 팔리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프라크리트 Prakrit 어(俗語)나 산스크리트 어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여러 부파에 의해 전승된 몇 가지 성전이 남아 현존하는 ‘율장’과 ‘경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율장’으로서는 팔리어로 씌어진 남방상좌부(南方上座部, 分別說部)의 <팔리율>과 한역으로 전해지고 있는 법장부(法藏部)의 <사분율(四分律)>, 화지부(化地部)의 <오분율(五分律)>,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가 있으며,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는 티베트 역(譯)도 전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진 완전한 형태의 율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설일체유부, 근본설일체유부, 대중부에 속한 율장의 단편은 상당한 분량이 발견되었으며, 그 밖에 서역어(西域語, 쿠차 Kuca어 등)로 씌어진 단편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한 부파의 ‘경장’으로 완전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남방 상좌부의 팔리어로 씌어진 ‘오부(五部)’ (‘部’는 nikaya의 譯語로서 ‘部類’의 뜻)뿐이며 그 밖의 다른 부파에서 전승된 대부분의 경장은 산실(散失)되었다. 한역으로 전하는 ‘경장’에는 ‘아함경(阿含經)’ 혹은 ‘아함(阿含)’ (‘아함’은 Agama의 음사로 ‘전승된 가르침’의 뜻)이라 일컬어지는 네 가지 아함경(阿含經)이 있는데, 그것은 단일한 부파의 소전(所傳)이 아니라 몇 개의 부파에서 전하는 아함이 따로따로 번역되어 우연히 하나로 갖추어진 것이다. 즉 법장부(法藏部)의 소속이라고 하는 <장아함경(長阿含經)>,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계통의 <중아함경(中阿含經)>과 <잡아함경(雜阿含經)> (<雜阿含經>에는 소속 부파 불명의 別譯도 있음), 대중부(大衆部) 계통이라고 하지만 소속 부파가 분명하지 않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등의 네 가지가 모여 사아함(四阿含)의 형태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사아함 이외에 여기에 속하는 각각의 경전 중 하나만 별도로 한역된 것도 있으며, 또 여러 가지 산스크리트 경전의 단편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고 있다. 간다라어로 씌어진 <법구경(法句經)> 등도 있으며, 또 티베트어로 번역된 경전도 약간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인 경전은 일찍이 존재하였던 여러 부파에 소속된 아함경 전체에서 볼 때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팔리어 성전

오늘날 현존하는 성전 가운데 가장 잘 정비된 형태의 것인 팔리어 성전의 내용을 한역의 주된 성전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팔리어]                                                                 [漢譯]

律藏(Vinaya-pitaka) ...................... <四分律>.<五分律>.<十誦律>.<摩訶僧祇律>.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등. 내용 조직의 대강은
팔리율에 준함.
Ⅰ. 經分別(Sutta-vibhanga, 經 즉 계율의 조문과 그 해설)
Ⅱ. 建度部(Khandhaka, 출가교단의 운영 규칙)
Ⅲ. 附隨(Parivara, 부록)
經藏(Sutta-pitaka)

[五部]                                                                                               [四阿含]

Ⅰ. 長部(Digha-nikaya, 긴 경전의 집성, 34經) ……………………………… <長阿含經> 30경
Ⅱ. 中部(Majjhima-nikaya, 중간 길이 경전의 집성. 152經) …………… <中阿含經> 222경
Ⅲ. 相應部(Samyutta-nikaya, 짧은 경전의 내용별 집성, 2872經 등)… <雜阿含經> 1362경
Ⅳ. 增支部(Anguttara-nikaya, 짧은 경전의 교설 중 數에 의한 집성, 2189경) … <增一阿含經> 471경
Ⅴ. 小部(Khuddaka-nikaya, 앞의 四部에 포함되지 않은 15경) ………부분적인 것만 번역됨.

<法句經> · <本事經> · <義足經> · <生經> 등
<小誦 Khuddakapatha> · <法句 Dhammapada> · 
<自說 Udana> · <如是語 Itivuttaka> · <經集 Suttanipata> · 
<天宮事 Vimanavatthu> · <餓鬼事 Petavatthu>  ·  <長老偈
Theragatha>  ·  <長老尼偈 Therigatha>  ·  <本生 Jataka>  ·  
<義釋 Niddesa>  ·  <無碍解道 Patisambhidamagga> · 
<譬喩 Apadana>  ·  <佛種姓 Buddhavamsa>  ·  <小行藏 Cariyapitaka>

 팔리어 성전을 전지(傳持)한 남방 상좌부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율장’과 ‘경장’ 이외에 부파시대에 들어와 성립한 ‘논장(論藏, abhidhamma-pitaka, 석존 교설에 관한 철학적 논의)’도 갖추고 있어서 이른바 삼장(三藏)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팔리어는 원래 서부인도의 방언이었는데 석존 입멸 후 초기교단이 서부인도로 확대되면서 성전의 용어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 아쇼카 왕 시대에 왕자 마힌다(Mahinda)가 이 서부인도의 불교를 세일론(스리랑카)에 전하였다고 하며, 또 기원전 1세기 경 세일론의 밧타가마니 아바야(Vattagamani Abhaya) 왕 시대에 그때까지 구송(口誦)되고 있던 팔리어 삼장이 비로소 문자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성전용어로서는 가장 오래된 언어인 팔리어로 씌어진 ‘율장’과 ‘경장’도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확정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로, 그 후 증광(增廣)되고 개변(改變)되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팔리어 성전은 세일론에서 확정되면서부터 그 후 점차 버마(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일부)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해져 유포되었다. 또한 팔리어는 고유한 문자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는 세일론 문자(싱하라 Sinhala 문자), 버마(미얀마) 문자, 타이 문자(샴 문자) 등 각각의 문자로 출판되었고 인도에서도 데바나가리 Devanagari 문자로 출판되고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런던의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에서 로마자 교정본이 출판되었으며, 팔리어 성전은 이것에 의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후지타 코타츠 외/권오민 옮김

이 글은 후지타 코타츠 외/권오민 옮김,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서울: 민족사, 1989), pp.201-213에 나오는 것이다. 팔리 성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제일결집(第一結集)

팔리어 <율장(律藏)> ‘소품(小品)’에 의하면 석존이 입멸한 직후 마하캇사파(大迦葉)의 제언에 따라 500 명의 출가 수행자(比丘)들이 라자가하에 모여 우안거(雨安居)를 행하며 석존의 가르침을 결집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흔히 제일결집(第一結集)이라고 한다.

‘결집’(Samgiti)이란 석존의 교설을 ‘함께 암송하는 것(合誦)’의 의미로 성전을 편집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는 마하캇사파가 회의를 주재하고 우팔리가 ‘율(律)’ (vinaya)을 아난다가 ‘법(法)’ (dhamma, dharma)을 송출(誦出)하고 참가자 전원이 석존의 교설로 확인하였다고 한다. 이 제1결집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같은 형태의 전설이 여러 부파의 문헌에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필시 어떠한 형태로든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제1결집에서 송출되었다고 하는 율(律)과 법(法)의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제1결집을 전하고 있는 모든 전설(傳說)에서는 각각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지만 모두 자기 부파의 ‘율장(律藏)’과 경장(經藏)의 내용에 대한 것이어서 당시의 사실(史實)을 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제1결집의 율과 법의 내용이 훗날의 <율장>과 <경장>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는 참고가 될지 모르나 그 발전의 과정을 명확하게 더듬어 보는 것은 실제로 곤란한 문제이다.

율장(律藏)과 경장(經藏)의 이전 단계

근래 연구된 바에 의하면 초기불교 성전으로서 <율장>과 <경장>이 편집되기 전에 이미 복잡한 성립사가 있었다고 한다. 먼저 <율장>에 대해 살펴보면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의 조문을 모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atimokkha, Pratimoksa)가 비교적 일찍 정리되어 ‘경(經)’(sutta, sutra)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점차 그것의 설명 해석인 ‘경분별(經分別)’이 성립하게 된다. 또 출가교단의 운영에 대한 제반 규칙인 ‘건도부(建度部)’의 주요부분도 비교적 오래전에 성립하였다. 불멸(佛滅) 100년(또는 110년) 베살리에서 개최된 제2결집은 계율상 10 가지 문제(이른바 十事)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는데, 이때까지 바라제목차와 건도부의 원형적인 형태가 갖추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반해 <경장>은 석존(및 그 제자)이 그때그때 언급한 설법을 집성한 것으로, 현재와 같은 형태로 종합되기 이전에 먼저 제자들에 의해 기억하기 편리한 형태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즉 석존이 자신의 교설을 필사(筆寫)하였다고 하는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교설은 모두 그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며, 그것은 모두 개략적인 줄거리의 형태로서 정리된 것이다.

이러한 개관의 형태는 싯구라든가 짧은 산문과 같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전승되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조직적인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구분교(九分敎)’ 혹은 ‘십이분교(十二分敎)’라고 하는 분류이다. 구분교라고 하는 것은 팔리어 성전에 의하면,

⑴ 숫타 sutta (‘契經’, 석존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정리한 산문)
⑵ 겟야 geyya (‘應頌’ 또는 ‘重頌’, 숫타의 내용을 詩로 반복하는 형식)
⑶ 벳야카라나 veyyakarana (‘記說’, ‘授記’, 간결한 문답 형식)
⑷ 가타 gatha (‘偈頌’, 詩句의 형식)
⑸ 우다나 udana (‘自說’ 또는 ‘感興語’, 석존이 감응적으로 설한 詩)
⑹ 이티붓타카 itivuttaka (‘如是語’, 켓야의 특수한 형식)
⑺ 자타카 jataka (‘本生’, 석존의 전생 이야기)
⑻ 베달라 vedalla (‘毘陀羅’, ‘方廣’, 중층적인 교리문답)
⑼ 앗부타 담마 abbhuta-dhamma (‘未曾有法’, 희유한 공덕 · 기적에 관한 교설)

의 아홉 가지를 말하며, 북전(北傳)의 문헌(산스크리트어 및 한역의 經論)에만 나오는 십이분교는 구분교에다 다음의 세 가지를 더한 것이다.
⑽ 니다나 nidana (‘因緣’, 계율 조문의 성립 사정에 관한 이야기)
⑾ 아바다나 avadana (‘譬喩’, 불제자에 대한 과거세 이야기)
⑿ 우파데샤 upadesa (‘논의(論議)’, 교리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

여기서 구분교와 십이분교 중 보통 구분교가 더 오래된 분류라고 보며, 또 구분교 가운데에서도 처음 다섯 가지 형식이 뒤의 네 가지 형식보다도 오래된 것이라고 본다. 구분교와 십이분교는 ‘율’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만 주로 ‘법’에 관한 분류이며, ‘경장’의 오부(五部), 사아함(四阿含)의 분류보다도 더 오래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만 구분교와 십이분교가 오부(五部), 사아함(四阿含)보다 먼저 성립하였다고는 해도 구체적인 경전의 분류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요컨대 이러한 분류는 불제자들이 정리한 석존 교설의 줄거리를 형식적으로 정리하여 기억하기 쉽게 하려는 동시에 성전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구분교나 십이분교처럼 간결하고도 개략적인 형식만으로는 석존이 실제로 설법할 때의 상황이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갖춘 형식의 경전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또한 구분교나 십이분교의 분류에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경전의 작성이 요구되었다. 이렇게 하여 점차 현재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경전이 형성되었고, 이들 다수의 경전을 새롭게 분류하고 집성한 ‘경장’이 성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성전(聖典)

‘율장’과 ‘경장’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일반적으로 그 일단의 원형이 이루어진 것은 석존 입멸 후 100년 무렵으로 생각된다. 필시 입멸 직후 제1결집 무렵부터 석존의 교설 전체를 정리하고 편집하려는 관심이 높아져, 그 후 약 100년 사이에 ‘율’에 관한 것은 ‘율장’으로 집성되고 ‘법’에 관한 것은 ‘경장’으로 집성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기서 ‘장(藏, pitaka)’이라고 하는 것은 ‘바구니’라고 하는 의미로서 각각의 율(律)이나 법(法)의 수록을 의미한다.

여기서 석존 입멸 후 100년 무렵이라고 하는 것은 초기의 불교교단이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의 두 가지 부파로 분열(이른바 根本分裂)한 연대인데, 그 후 이 두 파는 더욱 세분되어 이른바 소승이십부(小乘二十部)라고 하는 많은 부파로 분열(이른바 枝末分裂)하였다. 초기교단이 부파분열함에 따라 초기 성전인 ‘율장’과 ‘경장’도 각각의 부파교단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각 부파에 의한 전승은 자파(自派) 성전의 정비나 고착을 촉진시킨 반면 성전의 증광(增廣)이나 개변(改變)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기도 하였다. 성전의 용어도 동일한 것이 아니라 부파에 따라 팔리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프라크리트 Prakrit 어(俗語)나 산스크리트 어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여러 부파에 의해 전승된 몇 가지 성전이 남아 현존하는 ‘율장’과 ‘경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율장’으로서는 팔리어로 씌어진 남방상좌부(南方上座部, 分別說部)의 <팔리율>과 한역으로 전해지고 있는 법장부(法藏部)의 <사분율(四分律)>, 화지부(化地部)의 <오분율(五分律)>,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가 있으며,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는 티베트 역(譯)도 전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진 완전한 형태의 율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설일체유부, 근본설일체유부, 대중부에 속한 율장의 단편은 상당한 분량이 발견되었으며, 그 밖에 서역어(西域語, 쿠차 Kuca어 등)로 씌어진 단편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한 부파의 ‘경장’으로 완전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남방 상좌부의 팔리어로 씌어진 ‘오부(五部)’ (‘部’는 nikaya의 譯語로서 ‘部類’의 뜻)뿐이며 그 밖의 다른 부파에서 전승된 대부분의 경장은 산실(散失)되었다. 한역으로 전하는 ‘경장’에는 ‘아함경(阿含經)’ 혹은 ‘아함(阿含)’ (‘아함’은 Agama의 음사로 ‘전승된 가르침’의 뜻)이라 일컬어지는 네 가지 아함경(阿含經)이 있는데, 그것은 단일한 부파의 소전(所傳)이 아니라 몇 개의 부파에서 전하는 아함이 따로따로 번역되어 우연히 하나로 갖추어진 것이다. 즉 법장부(法藏部)의 소속이라고 하는 <장아함경(長阿含經)>,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계통의 <중아함경(中阿含經)>과 <잡아함경(雜阿含經)> (<雜阿含經>에는 소속 부파 불명의 別譯도 있음), 대중부(大衆部) 계통이라고 하지만 소속 부파가 분명하지 않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등의 네 가지가 모여 사아함(四阿含)의 형태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사아함 이외에 여기에 속하는 각각의 경전 중 하나만 별도로 한역된 것도 있으며, 또 여러 가지 산스크리트 경전의 단편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고 있다. 간다라어로 씌어진 <법구경(法句經)> 등도 있으며, 또 티베트어로 번역된 경전도 약간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인 경전은 일찍이 존재하였던 여러 부파에 소속된 아함경 전체에서 볼 때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팔리어 성전

오늘날 현존하는 성전 가운데 가장 잘 정비된 형태의 것인 팔리어 성전의 내용을 한역의 주된 성전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팔리어]                                                                 [漢譯]

律藏(Vinaya-pitaka) ...................... <四分律>.<五分律>.<十誦律>.<摩訶僧祇律>.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등. 내용 조직의 대강은
팔리율에 준함.
Ⅰ. 經分別(Sutta-vibhanga, 經 즉 계율의 조문과 그 해설)
Ⅱ. 建度部(Khandhaka, 출가교단의 운영 규칙)
Ⅲ. 附隨(Parivara, 부록)
經藏(Sutta-pitaka)

[五部]                                                                                               [四阿含]

Ⅰ. 長部(Digha-nikaya, 긴 경전의 집성, 34經) ……………………………… <長阿含經> 30경
Ⅱ. 中部(Majjhima-nikaya, 중간 길이 경전의 집성. 152經) …………… <中阿含經> 222경
Ⅲ. 相應部(Samyutta-nikaya, 짧은 경전의 내용별 집성, 2872經 등)… <雜阿含經> 1362경
Ⅳ. 增支部(Anguttara-nikaya, 짧은 경전의 교설 중 數에 의한 집성, 2189경) … <增一阿含經> 471경
Ⅴ. 小部(Khuddaka-nikaya, 앞의 四部에 포함되지 않은 15경) ………부분적인 것만 번역됨.

<法句經> · <本事經> · <義足經> · <生經> 등
<小誦 Khuddakapatha> · <法句 Dhammapada> · 
<自說 Udana> · <如是語 Itivuttaka> · <經集 Suttanipata> · 
<天宮事 Vimanavatthu> · <餓鬼事 Petavatthu>  ·  <長老偈
Theragatha>  ·  <長老尼偈 Therigatha>  ·  <本生 Jataka>  ·  
<義釋 Niddesa>  ·  <無碍解道 Patisambhidamagga> · 
<譬喩 Apadana>  ·  <佛種姓 Buddhavamsa>  ·  <小行藏 Cariyapitaka>

 팔리어 성전을 전지(傳持)한 남방 상좌부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율장’과 ‘경장’ 이외에 부파시대에 들어와 성립한 ‘논장(論藏, abhidhamma-pitaka, 석존 교설에 관한 철학적 논의)’도 갖추고 있어서 이른바 삼장(三藏)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팔리어는 원래 서부인도의 방언이었는데 석존 입멸 후 초기교단이 서부인도로 확대되면서 성전의 용어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 아쇼카 왕 시대에 왕자 마힌다(Mahinda)가 이 서부인도의 불교를 세일론(스리랑카)에 전하였다고 하며, 또 기원전 1세기 경 세일론의 밧타가마니 아바야(Vattagamani Abhaya) 왕 시대에 그때까지 구송(口誦)되고 있던 팔리어 삼장이 비로소 문자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성전용어로서는 가장 오래된 언어인 팔리어로 씌어진 ‘율장’과 ‘경장’도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확정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로, 그 후 증광(增廣)되고 개변(改變)되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팔리어 성전은 세일론에서 확정되면서부터 그 후 점차 버마(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일부)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해져 유포되었다. 또한 팔리어는 고유한 문자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는 세일론 문자(싱하라 Sinhala 문자), 버마(미얀마) 문자, 타이 문자(샴 문자) 등 각각의 문자로 출판되었고 인도에서도 데바나가리 Devanagari 문자로 출판되고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런던의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에서 로마자 교정본이 출판되었으며, 팔리어 성전은 이것에 의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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