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살로메의 명상노트

행복한 왕자

파르헤지아 2009. 3. 28. 00:20

 

어린 시절 초등학교 도서관을 정리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파본이 난 책들은 정리하는 우리들에게 주셨었다.

그때 였다. 내가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만난 것은.

난 그 동화책을 읽는 동안내내 한없이 눈물이 흘렀고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는

한없이 흐느끼며 행복한 왕자와 제비가 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슬픔을 잊는 데도 한참이 흘러야 했으니 나는 어려서부터 무지 울보였던 것 같다.

 

따뜻한 나라 이집트를 향해 떠나는 일행들과 미처 함께 떠나지 못한 제비 한 마리가

쉴 곳을 찾아 날아든 행복한 왕자의 동상.

모든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감탄하며 부러워하는 이 동상을 휴식처로 삼은 제비는

자신의 몸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 빗물이 아닌 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내가 살아서 인간의 심장을 갖고 있을 때에는 눈물이 뭔지 몰랐어.

 슬픔이 들어올 수 없는 근심 걱정 없는 궁전에서 살았으니까. 

 만약 즐거운 것이 행복이라면, 그때 난 행복했었어. "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였기에 담장 너머 세상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인간이였을 때의 행복한 왕자.

가장 행복한 생을 마감하고 납덩어리로 만든 심장을 가진 동상으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으면서

비로소 비참하고 추한 세상을 바라보며 행복한 왕자는 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행복한 왕자의 동상의 칼자루에 박혀 있는 루비, 왕자의 두 눈인 사파이어, 그리고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빛나는

순금을 제비를 시켜 자신의 몸에서 한조각씩 떼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어 그들을 돕게 한다.

그렇게 자신의 몸에 치장된 모든 아름다운 금과 보석을 다 떼어 주자 잿빛의 흉물스런 동상으로 변해버린 행복한 왕자.

행복한 왕자의 겉 치장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흉물로 변한 왕자의 동상을 용광로에 던져지지만

납으로 된 심장만은 녹지 않은채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따뜻한 나라로 가지 않으면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제비 역시도

행복한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다 왕자의 동상 아래에서  결국은 싸늘한 주검이 된다.

행복한 왕자와 제비는 그렇게 함께 서로의 사랑으로 세상에 희생이라는 협동을 통해 많은 가난하고 가여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고 그들의 괴로움을 어루만졌다.

 

꼭 이 행복한 왕자가 이제 내 눈에는 고타마 붓다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행복이 뭔지 깨닫는다는 것,

슬픔이 뭔지 깨닫는다는 것,

고통을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진지하게 삶을 살고 통찰하는 이에게만 오는 것일까?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성전과 사찰에 가서 그들이 만든 동상에 엎드려 기도한다.

그러나 과연 제비가 왕자를 돕고자 했던 그만한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그들이 믿는 종교를 따르는지 궁금했다.

어려서 종교라는 이름을 버리게 된 것 역시도 나와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을 버리기 위해서 였던 것 같다.

어디에 속해서 다르다는 이유로 배타적이 되고 전투적이 되기 싫었던 어린 나는 어디로 갔을까?

나도 모르게 지금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늘 나는 행복한 왕자를 생각하면 아직도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붓다라는 사나이도

예수라는 사나이도

내 눈에는 그저 가여운 사람들로만 보이니 이것도 병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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