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으로 본 모텔 풍경-박홍순의 '꿈의 궁전' | |
6699 | 2006-07-24 | 추천 : 0 | 조회 : 1110 |
모텔과 예식장의 공통점은 뭘까? 남녀가 만나, 관계를 맺고, 욕망을 완성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찰나의 쾌락을 꿈꾸는 인스턴트 커플과,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연인들이 찾아드는 이곳의 환상을 바늘구멍 사진기로 포착한 사진가 박홍순을 만났다.
박홍순의 세 번째 개인전인 ‘꿈의 궁전’ 출품작은, ‘대동여지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백두대간과 한강 지류를 기록해온 전작과 사뭇 다르다. 엄정한 흑백사진으로 구현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면모는 사라지고, 파파라치가 다급히 찍은 캔디드 사진처럼 흐릿한 컬러사진만 남았다.
2004-03-10 양수리 1-1
꿈처럼 아련히 보이는 사진 속 풍경은, 뾰족지붕에 깃발이 꽂힌 유럽풍 성채나, 이슬람 양식의 원추형 지붕, 이집트 피라미드, 자유의 여신상 따위다.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나 감회에 넘쳐 찍을법한 이런 기념사진을, 박홍순은 왜 굳이 찍은 걸까? 2005-10-09, 전농동 1
모텔과 예식장-성지(性地)와 성지(聖地) 사이
그 환상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바로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 이슬람 양식, 심지어 피라미드와 야자수와 자유의 여신상까지 총동원된 국적 불명의 키치적인 건축물이다. 수많은 모텔의 뾰족지붕 아래 나부끼는 ‘승리의 깃발’이야말로, 이 공간이 지닌 함의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전시 전경. 서양의 성채를 닮은 건물 첨탑에, 승리의 기념비 같은 깃발이 휘날린다.
보장할 수 없는 행복의 ‘증명사진’
하지만 현실이 그럴수록 예식장은 결혼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더욱 골몰하게 된다. 예식장이라는 성지(聖地)는 경쟁적으로 우람한 성채의 모습을 갖추면서 고객 모두를 ‘행복한 왕자와 공주’로 만들고자 한다. 결혼 전 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고 의례적으로 하는 웨딩 촬영은 물론, 결혼식 당일 양가 부모, 일가 친척, 친구 등 촬영 멤버를 바꿔가며 지겹도록 찍는 사진 역시, 모두 ‘행복한 미래’의 증명사진을 꽝! 소리 나게 박아놓기 위한 것이다. 비록 그 행복이 얼마나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해도, 궁전을 닮은 예식장 안에서만큼은, 그들의 행복은 견고하다.
박홍순은 모텔과 예식장이라는, 서로 다르되 닮은 두 공간 속에 숨은 은밀한 욕망을 엿보듯 촬영한다. 일반적인 카메라 대신 ‘바늘구멍 사진기’, 즉 핀홀카메라를 만들어 이 풍경을 촬영하면서 그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어낸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훔쳐보기’의 욕망을 촬영 형식을 통해 구현하면서, 바늘구멍 사진기 특유의 아련한 이미지로 인해, 마치 꿈속을 보는 것 같은 모호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들을 촘촘히 뜯어보면 이들 공간 속에 숨은 허술함을 금세 발견할 수 있다. 한 모텔 앞에는 눈 쌓인 공터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고, 비닐하우스와 나란히 서 있는 모텔이 있는가 하면, 이슬람 궁전 같은 동그란 지붕 뒤로 멀리 아파트가 빼꼼 머리를 내민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숨은그림찾기 하듯 사진 속에 숨은 풍경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도 박홍순의 작품을 감상하는 한 재미다.
전시된 사진들을 핀홀카메라로 들여다보듯 관람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어, 사람들의 관음적 욕망을 풍자했다.
이번 전시는 7월 19일부터 8월 7일까지 갤러리 쌈지 제1전시실에서 열린다. 바로 옆 제2전시실에서는 세계 유명 관광지의 미니어처 건축물을 관광엽서처럼 보이게 촬영한 김동욱의 ‘그림엽서’전도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문의전화 02-736-0088.
[작가 인터뷰]
박홍순(이하 박): 핀홀카메라를 쓴 건, 형식과 내용 두 가지 측면에서 이유가 있어요. 눈은 주관적이어서 보고 싶은 것만 보지만, 렌즈는 극명하게 사물을 포착하죠. 하지만 핀홀카메라는 상을 흐리면서 이미지에 환상을 덧씌워요.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필름이 없어지는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핀홀카메라의 특성을 접목해보자는 면에서 시도했습니다. 일종의 ‘디지로그’적인 시도라고나 할까요. 핀홀카메라의 원리는 간단해요. 렌즈 교환식 디지털 카메라에, 렌즈 대신 구멍 뚫은 바디캡을 씌워 사진을 찍는 거죠.
가만히 보면 모텔, 예식장, 카페 세 군데가 모두 이성을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곳이에요. 이성에게 환상을 심어주려는 심리가 거기에 투영된 것이 아닌가 싶었죠. 외국 건축 양식을 제대로 본뜬 게 아니라, 대강 본뜬 이런 건축물들이 유독 우리나라에 많아요.
고: 어떻게 보면 '전 국토의 놀이공원화'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박: 그래요, 어찌 보면 온 나라가 세트장을 지향하는 거죠. 촬영 다니다 보면 진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도 많고요. 그것뿐 아니라 잘못된 유적지 복원 문제도 심각해요. 무너진 성곽을 일부만 쌓아 복원하는 게 아니라, 다 허물어버리고 새 돌로 다시 쌓기도 하고…. 고: ‘꿈의 궁전’이란 전시 제목도, 사랑에 대한 환상이나 어설픈 무국적 건축 양식을 풍자하기 위해 지은 건가요? 그래서 작품 디스플레이도 좀 다르게 해봤어요. 외국 성에 유화 같은 걸 붙여놓는 방식을 보면, 일렬로 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걸어놓잖아요.
자유분방하게 걸린 액자들. 이집트, 그리스, 이슬람 건축 양식부터 네덜란드 풍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키치적 건축물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고급 원목 액자를 흉내냈지만, 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금박 액자다. 사진 프레임 바깥에도 액자 이미지를 합성해 넣었다. '가짜 이국 풍경'과 '가짜 원목 액자'의 유쾌한 만남.
고: 그럼 백두대간이나 한강 같은 기존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어떻게 되나요?
고: 홍익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후에 동 대학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하셨는데, 다소 늦게 사진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
→ 원문보기 : http://blog.daum.net/forestcat/78169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