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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쿤달리니 요가 (KUNDALINI YOGA)

파르헤지아 2005. 8. 20. 20:14
제 6 장. 쿤달리니 요가 (KUNDALINI YOGA) 창조이자 생성의 이원론(Twin principles) 즉, 자체로서의 의식과 힘으로서의 의식인 탄트라 시스템에서의 시바(Siva)와 샥티 (Sakti)는 각각 우주 형태로서 복제된다. 인체에서, 청정 의식인 시바는 최상의 뇌 중심부- 사하스라라(Sahasrara)에 위치하며 의식의 힘인 Prakrti-Sakti는 최하위 중심부- 물라드하라(Muladhara)에 위치한다. 정상적인 경우, 이 샥티는 잠재적이며 이 조직 체(organism)가 유지되고 계속 진행되는 Vayu Prana의 몇가지 형태들로서의 제 2의 현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잠들어 있는" 힘을 깨우기 위해서, 샥티 자신을 정상에 위치한 마스터 의식과 합일하는 것 즉, 몸의 힘을 영혼의 힘으로 합치하는 것이 이 요가의 목적이다. 이 합일은 황홀한 samadhi를 가져다 준다. 이 samadhi 에서 전체시스템은 희열(Ananda)로 가득차며 개 아적 의식은 지고의 의식과 합일한다- Jiva는 Siva와 합일한다. 각 인간 조직체의 기반이 되며 이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힘인 샥티는 쿨라-쿤달리(Kula-Kundali)라고 말하며, 그것은 또아리를 틀고(Kundali, coiling up) 앉아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모든 다른 물질적 정신적 힘들이 현현되는 몸속의 Para Sakti이 다. 샥티는 또한 Kutilangi(꾸부러진 것)으로 알려지며 독사-Bhujangi, Serpent, Isvari 등으로서 알려져 있다. 독사의 힘은 물 라드하라에 3과 1/2 번 또아리를 틀챈 앉아있다. 자신의 입으로 슈슘나의 입구- Brahmadvara, Brahman으로의 입구-를 막고 있다. 쿤달리니는 Kanda( 항문으로부터 두 손가락 위와 성기로부터 두 손가락 아래에 있다고 말함)라 불리는 나디들(Nadis)의 근원 바로 위에 있다. 쿨라-쿤달리니는 또한 Sabda Brahman이다- 몸에있는 Nada 샥티와 모든 만트라들은 쿤달리니의 형식화(formulati on)이다. 쿤달리니는 모든 말의 근원이다. 한편, 6개의 차크라들도 이 창조적 힘의 현현이다. Prana는 이 쿤달리니 샥티의 특정 한 현현이며 그녀를 깨우는 과정은 Prana에 의념을 집중함으로써 시작한다. 정확한 과정은 스승(Guru)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 나, 깊은 기술적인 설명에 앞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수행자(sadhana)는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물론 수행자가 Astanga, Yama, N iyama 등의 기본적인 규율을 충실히 훈련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수행자는 규정된 asana로 자리를 잡고 앉아 양미간을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안정시킨다. 공기를 들이쉬고 내쉰다. 몸의 상부 를 수축시키고 (위쪽으로의 숨) prana를 저지한다. 그렇게 위쪽으로 올라가지 못한 공기는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경향이 있다. 이 러한 apana로서 vayu의 탈출은 하위부를 적절히 수축시킴으로써 저지된다. 그렇게 모아진 vayu는 물라드하라를 향해 방향을 잡고 마음과 의지는 그것에 집중한다. 그 결과로서 Prana와 Apana가 결집된 마찰력으로 인하여 강한 열이 발생되고 이 것은 잠자고있 는 독사-쿤달리니를 깨운다. 그렇게 활성화된 쿤달리니는 위쪽으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 만트라의 도움으로 정신을 집중을 하면 불길의 형태를 갖는 jivatma가 심장으로부터 물라드하라로 내려와서 깨어난 샥티와 합일되어 함께 움직인다. 쿤달리니가 또아리 를 풀게 되면 슈슘나의 입 근처에 위치한 브라만의 입구에 있는 틈새-Brahmadvara가 열리고 그 안의 Citrini Nadi를 통하여 쿤달 리니가 상승하게 된다. "Asanas, Kumbhakas, Bandhas 그리고 Mudras들을 이용하여 쿤달리니를 깨운다. 그렇게하여 에다와 핑갈라로부터 빠져나 온 프라나는 슈슘나로 진입한 후 또는 空(sunya)로 진입한 후 브라흐마간드하(Brahmarandhra)를 통하여 상승한다. 이때 요기는 진행중인 카르마(業)에서 자유로와지며 중립의 상태에 도달한다. 따라서, 그 목적은 Ida와 Pringala로부터 프라나를 Susumna로 얻어내어 신체의 나머지 부분에서 생명력을 빼는데 있으며, 그렇게하여 그 프라나를 앞으로 다가올 만개한 로터스들을 통하여 상 승하도록 하는데 있다. 척주의 각 편에 위치한 신체는 생명력을 잃고 프라나의 전체 기류(氣流)가 그 척주속으로 빨려들어간다. " " 사마디(Samadhi)에 도달하는 모든 방법들의 원리는 프라나를 에다(Ida)와 핑갈라(Pingala)로부터 빼내는데 있다. 이것 을 이루게 되면 이 나디들(Nadis)은 사멸되는데 그 이유는 생명력이 이들로부터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라나가 슈슘나에 들어가게 되고 쿤달리니의 도움으로 슈슘나에 있는 6개의 차크라들을 관통하게 된 후 Laya가 되거나 사하스라라에서 흡수된다. 물라드하라(Mul adhara)로부터 작용할때 이 목적에 대한 수단은 세부상에 있어서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통적인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Jalandhara와 Mulabandha에 의해서나 또는 합일에 의한 내부적인 불이 증가될 때 프라나의 하부로 미치는 힘과 아파나(Apan a)의 상부로 미치는 힘(자연스러운 방향의 역)이 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피스톤이 중앙의 공기를 방출시킬 수 없도록 양 쪽을 막은상태에서 동작하는 "속이빈 관"과 같아 그 속이 가열되게 된다.그리하여, 그렇게 생성된 열에 의하여 깨어난 독사의 힘(Serpent Force)인 쿤달리니는 단정하게 있던 곳에서 잠재적 상태(sleep 상태)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때 쿤달리니는 쉭쉭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길께 뻗어서 브라흐마드바라(Brahmadvara)로 진입한다. 즉, 슈슘나로 들어간다. 그 후, 몇차례의 반복 적인 시도후에 슈슘나에 있는 차크라들이 관통된다. 이것은 세 개의 매듭(Granthis)에서 특별히 어려움을 수반하는 점진적인 과 정이다. 세 개의 매듭에서 마야 샥티(Maya Sakti)는 특히 하복부 매듭에서 강렬하다. 이 하복부의 관통은 상당한 고통과 신체상 의 이상과 심지어 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샥티가 위쪽으로 분출하여 그 길을 재촉할때[주석: 여기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다. 존 우드라퓌경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것이 쿤달리니 샥티 자체인가 아니면 그것의 분신인가. 후자의 의견이 탄트라 사스트라의 잘 알여진 권위자 Swami Pratyagatman anda가 고수하고 있는 의견이다], 샥티는 위로 만개한(활짝 피어있는) 각각의 로터스(연꽃)들에 마딱뜨리게 된다. [중간 주석 : 하단 번역본 참고] 이 것이 그 유명한 차크라 베다(Cakra Bhed) 즉, 차크라 관통이다. 센터에서 센터로 진행해가면서 샥티는 센터들속에 내포되고 집중되어있는 타트바들(Tattvas)을 완전히 삼켜버린다. 각각의 타트바는 다음에 위치한 더 신비한 타트바( 바로 다음번의 因)로 흡수되고 모든것은 Cid-Atma로 융해된다. "쿤달리니가 신비의 지바트마(Jivatma)와 합일되어 로터스들을 각각 통과해 갈때, 쿤달리니는 이 차크라들 각각에 있는 우세적인 타트바들과 차크라들속에 있다고 앞서 설명한 모든 것들을 자신의 몸속에 흡수한다. 상승 운행이 진행되면서, 보다 내 면적 타트바들(grosser Tattvas) 각각은 Laya 상태로 진입하며 쿤달리니 에너지로 대치된다. 쿤달리니는 비슈다-차크라를 지나간 후 그 들 모두를 대치한다. 이러한 보다 내면적인 타트바들과 관련되어 작용하는 감각(sense)들은 쿤달리니 속에 합병된다. 쿤 달리니는 그 후 자신속에 아즈나의 신비적 타트바들을 흡수시킨다. 쿤달리니 자체는 이 세 개의 界(plane)들을 각각 상승해 가면 서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합일에 적당한 형태들로서 개개의 링가들(Lingas)과 합일한다. 물라드하라에서 쿤달리니는 내면적이고 물질적인 현현된 상태(Virat)의 샥티이며, 반면 아즈나에서 쿤달리니는 정신적이고 심령적이고 신비적인 몸(Hiranya- garbha)의 샥티이다. 그리고 사하스라라에서 쿤달리니는 영계(靈界-spiritual plane)-Isvara의 샥티이다. 사하스라라에서의 샥티 는 시바의 양상으로 차별을 두지 않으며 숨겨진 잠재 상태에 있는 모든 하위 계들을 자신의 힘의 측면에서 포함하고 있다.... "상승운행은 내면체에서 신비체로 이행된다. 타트바들의 융해(dissolution)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냄새와 발에 해당하는 인드리야스(Indriyas)를 갖는 Prthivi는- 여기서 발은 자신의 기반으로서 땅의 흙인 Prthivi를 갖고 있다- Gandha-Tattva로 융 해된다. 즉, 물라드하라에 위치한 냄새의 탄마트라(Tanmatra of smell)로 융해된다. 그 후, Gandha-Tattva는 스바드히스타나로 흡수되고 그 것과 Ap 그리고 관련 인드리야스(맛과 손들)이 Rasa(맛) 탄마트라속에 융해된다. 한편, Rasa 탄마트라는 마니퓨라에 들어가 거기에 있는 라사 타트바와 Tejas 그리고 관련 인드리야스(시각과 항문)들이 Rupa(sight) 탄마트라 속으로 융해된다. 그 리하여 시각(sight) 탄마트라는 아나하타로 흡수되고 그것과 Vayu 그리고 관련 인드리야스(촉각과 성기)가 Sparsa(Touch) 탄마트 라속에 융해된다. 한편, Sparsa 탄마트라는 비슈다로 흡수되고 거기서 그 것과 Akasa 그리고 관련 인드리야스인 청각과 입이 Sab da(sound) 탄마트라속에 융해된다. 그런 후에 Sabda 탄마트라는 아즈나로 흡수되고 거기서 그리고 그 위에서 Manas가 Mahat-Suks ma Prakrti내의 Mahat속으로 융해된다. Mahat는 사하스라라에서 Para Bindu와 합일한다. 이 합일의 경우 다양한 단계가 있다. Na da는 Nadanta로 그리고 다시 Vyapika로 Vyapika는 Samani로 Samnai는 Unmani로 그리고 Unmani는 Visnu-vakira 즉 Pum-bindu( Par amasiva)로 진행된다. 모든 글자들이 그렇게 융해될 때, 6개의 차크라들 모두는 로터스의 꽃잎이 문자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이 융해된다... "상승운행할때에, 물라드하라의 Brahma, Savitri, Dakini, Devas, Matrkas 그리고 Vrttis는 쿤달리니 안쪽으로 흡수된다 . 마치 Mahimandala 또는 Prthivi 그리고 쿤달리니가 지나가는 Prthivi-Bija 'Lam'도 마찬가지로 흡수된다. 이러한 Bijas에 대해 서, 소리의 힘들은 신비의 만트라 측면을 표출한다. 이 만트라는 각각의 Bija들속에 융해되어 있다. 따라서 'earth'는 그 씨(Bij a)에서 나와 그 곳으로 융해된다. 이 것이 창조적 의식의 특정한 양상이다. 발성 만트라(Vaikhari sabda) 또는 'Lam'은 만트라의 내면적 소리에서 표현이다.... " Devi가 물라드하라를 떠날때 쿤달리니의 각성으로 그리고 프라하 흐름의 강렬함으로 꽃을 위쪽으로 활짝 열었던 로터 스가 다시 닫히고 머리를 아래로 떨군다. 쿤달리니가 스바드히스타나에 도달할 때, 그 로터스는 다시 열리고 그 꽃잎을 위로 올 린다. 쿤달리니가 들어 갈 때, Visnu, Laksmi, Sarasvati, Rakini, Matrkas 그리고 Vrtti, Vaikunthadhama, Goloka 그리고 그곳 에 상주하는 Deva와 Devi가 쿤달리니의 몸속에 융해된다. Prthivi 또는 earth Bija 'Lam'은 타트바 물속에 융해되고 Bija 'Vam' 으로 전환된 물은 쿤달리니 몸속에 남게 된다. Devi가 마니퓨라 차크라에 도착할 때 즉, Brahma-granthi에 도착하게 될때 이 차 크라에 있던 모든 것이 쿤달리니와 합병된다. Varuna-Bija 'Vam'은 불속에 융해되며 그것은 Bija 'Ram'으로서 쿤달리니 몸속에 남게 된다.다음에 샥티는 아나하타 차크라에 도착한다. 이 아나하타 차크라는 비슈누의 매듭으로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도 그 곳에 있던 모든 것이 쿤달리니와 합병하게 된다. 불 'Ram'의 Bija는 공기로 기화되고 Bija 'Yam'으로 전환된 공기는 쿤달리니 속에 흡수된다. 그리하여, 쿤달리니는 Bharati 즉 Sarasvati의 안식처- 비슈다 차크라로 상승한다. 쿤달리니가 진입할 시에, Ar dha-narisvara Siva, Sakini, 16개의 모음글자, Mantra등이 쿤달리니속으로 융해된다. 공기 'Yam'의 Bija는 빛-에테르(ether)속 에 융해되고 그것은 자체로 Bija'Ham'으로 변형되어 쿤달리니 몸속에 합병된다.마침내, Vyoma(ether)의 Bija 즉, 'Ham'은 아즈나 의 신비의 타트바들속에 융해되고 'Ham'은 Devi로 흡수된다. Rudra-granthi를 통과한후, 쿤달리니는 Paramasiva와 합일한다. 쿤 달리니가 두개의 꽃잎을 갖는 로터스로부터 상부로 진행하면서 Niralambapuri, Pranava, Nada, 등등이 Devi 속에 합병된다. 쿤 달리니는 그렇게 상부로 진행하면서 자신속에 23개의 타트바들을 흡수시켰으며 내면적 요소들로 시작하여 모든 샥티들의 근원인 의식으로서 남아있는 샥티 자신을 Paramasiva와 합일한다. Paramasiva의 본성은 샥티들과 하나이다.... " 합일시에 흘러나오는 즙(amrta)은 신의 음료로서(ambrosial) Brahmarandhra에서 물라드하라에 이르는 것으로 Ksudra B rahmanda 즉, 소우주(mircrocosm)을 흠뻑적시며 차크라들의 Devata들을 만족스럽게 해준다. 존재계의 모든 것들을 망각한 수행자 가 형언할 수 없는 희열에 빠져드는 것이 바로 이 때이다. 청량감, 증진된 힘, 포만감등이 생명의 우물을 방문할 때마다 뒤따른 다... " 쿤다리니는 14개의 매듭'Knots'(Granthis)- 즉, 세개의 Lingas 6개의 차크라들 그리고 차크라가 포함하고 있는 5 개 의 Siva들을 관통한 후 Para-Sviva에서 분출한 즙을 마신후 쿤달리니 자신의 원래 안식처인 물라드하라로 다시 돌아간다. 쿤달리 니가 돌아갈 때, 쿤달리니는 이전에 흡수했던 모든 것을 차크라들속에 쏟아 붇는다. 다른말로, 쿤달리니의 상부로의 운행을 Laya -Krama라고 하며 차크라들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Laya 상태(융해-dissolution)되도록 하는 것이며, 쿤달리니의 회귀는 Srsti-kra ma로서 쿤달리니가 차크라에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성시키고 그들을 현현하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쿤달리니는 다시 물라드하 라로 돌아온다. 이미 차크라들안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쿤달리니가 각성되기 이전과 같은 위치에 나타난다. 사실, 하강하는 지바 트마(Jivatma)는 상승하여 因(cause)와 하나가 될 때 지나쳐간 분리된 여러개의 개체적 세계에 대한 관념(idea)을 만들어 낸다. 의식으로서의 쿤달리니는 의식의 힘으로서 쿤달리니가 분출했던 것을 흡수한다. 간략히 말해서, 쿤달리니의 회귀는 지바트마가 황홀(Samadhi)의 상태에서 깨어난 후부터 존재하는 최하위 界들의 현상계에서 지바트마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기는 그가 경험하였기 때문에 영(Spirit)의 본성과 상태를 알며, Mayik와 화신계(embodied world)로의 행로와 그로부터의 행로를 안 다. 이 요가는 각각의 요소들을 갖는 내면계를 그 인(cAUSE)로 관여하는 점진적인 과정이다.각각의 내면 요소(Mahabhuta)는 신비 적 요소(Tanmatra)와 관련 감각 기관과 함께 탄마트라 소리와 Manas을 갖는 마지막 요소 ether가 Ahankara 즉 자아의식(Egoism) 중 Vikrtis 속으로 융해될때까지 바로 위쪽에서 융해되는 과정을 밟는다.Ahankara는 창조적 관념을 최초로 현현한 Mahat로 합병 된다. Mahat는 Bindu로 합병되고 그 Bindu는 지고의 존재, 의식, 그리고 창조적 브라만으로서의 희열이다. 쿤달리니가 위로 올라 가게 되면 하위 신체부위가 힘을 잃고 시체처럼 차갑게 된다. 쿤달리니가 신체 부위를 통과하고 그 곳을 떠날때 그 신체 부위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이 것은 조직 전체로서 몸을 지탱해주는 힘으로서의 쿤달리니가 차크라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 한 것이다. 반대로, 머리의 상부는 빛을 발하게 되는데, 이 빛은 외부적인 광채(Prabha)가 아니라 밝음, 온기, 그리고 생기를 뜻 한다. 요가가 완전할 때, 요기는 지정된 자세로 곧게 앉게 되며, 신체 전체에서 찾을 수 있는 따사로운 온기의 흔적을 머리의 상 단부에서 느낄 수 있다. 즉, 샥티가 시바와 합일 되는 장소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쿤달리니는 오랜동안 사하스라라에서 머물러 있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근원지로 회귀하려는 自然스러운 경향이 있다 . 요기(Yogi)는 상승하강(上昇下降)의 과정을 여러번 되풀이 해야만 하며 기나긴 기간동안 샥티가 영원히 그 영주(Lord)와 함께 머물때까지 쿤달리니를 위에 머물도록 노력해야 한다. - 요기가 의도할때만 즉, 합일이 완전하고 해탈(Liberation- Mukti)가 완 전한 형태에 도달할 때에야 쿤달리니를 근원지로 회귀(回歸)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쿤달리니를 Jivanmuk ta 라고 한다. 요가에서, 즈나나(Jnana)나 관련 요가들에서 처럼 해탈을 위한 의지와 결합된 것은 단지 마음의 기능만이 아니라 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Mukti는 세속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탈피에 의해서나 집중, 명상,과 같은 정신 훈련에 의해서 또 는 정신적 존재의 힘- 탐구자의 즈나나 샥티에 의해서 도달할 수 있다. 여기서, Sadhana를 발효시키는 힘은 쿤달리니 샥티, 즉 모든 샥티들의 모체로서 깨어날 때 개아적 샥티에게 직접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즈나나(Jnana)를 부여한다. 더나아가서, 이 대리 자(Agency)는 여기에서 신체, 생명, 마음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힘이며 그것의 목표는 지바와 시바를 합일시키는 것 뿐만아니라 개아와 결부된 의식을 자유롭고 제한이있을 수 없는 청정한 의식, Mukti로 방출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완전한 존재, 신체, 마음 그리고 생명에너지를 그 합일에서 흘러나오는 황홀감-Bhukti인 즙(Nectar)로 세정시키는 것이다. Siddhi는 마음뿐만 아니라 개 인의 나머지가 즐거움에 참여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더 완벽하다. 이러한 황홀감은 특정 siddhis 즉, 초월적인 힘들과 함께 위 쪽으로의 다양한 차크라들에서 다양한 형태로 도달할 수 있다. 그 후, 황홀감이 가장 높은 자리 사하스라라에 도달한다. 이 사하 스라라에서의 황홀감은 찬연한 희열-Kevalanandarupam 이다. [ 중간 주석: 이 원고를 준비하는 동안, 흥미있는 책 하나가 우리의 손에 들어 오게 되었다. Light on the Path of Self-Realization(Pulb. by N. V. Gunaji, Thalakwadi. Belgaum, 1941)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요가 수행 단체에서 Sadhana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기록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들 중 하나를 발췌한 것은 본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진실성을 실용적으로 조명해 볼때 약간 상반된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 .... 그 때, 갑자기 빛이 보여지기 시작하였다. 날마다 햇살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였고 열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 , 달빛처럼 차갑게 보였던 빛이 본성에 있어 변화가 왔고 즐거움과 고요함 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 몇일 뒤에, 검은 돌들이 심 장 근처에 보였다. 화염(火焰)이 그 검은 돌들에서 나오느것이 보여졌다. 몇일 뒤에 하나의 줄기가 불길속에서 나왔고 그곳으로 부터 질경이 나무의 꽃과 같은 것이 입을 아래로 한 모습이 보여졌다. 몇일 뒤에, 꽃잎의 얼굴을 아래로 하지 않고 위로 향하고 있었다. 스승(Guru)이신 마하라자-Maharaja 가 이르시길 : '이것은 심장 근처에 있는 로터스다. 너는 그것을 몇일안에 뚜렷하게 보게 될 것이고 그 꽃잎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길은 사라졌고 줄기아래에 물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후, 꽃잎은 하나 하나 열기기 시작했다. 몇개는 위로 열리고 몇개는 아래로 열였다. 여신의 그림 아래에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유사하게 생긴 붉은 로터스가 보여졌다. " 몇일 뒤에, 검은 점들이 꽃잎위에 나타났고 그 꽃잎의 점들은 몇일 뒤에 글자들의 모양으 로 나타났다. 나는 스승에게 그 점들안에 있는 글자들이 실제적인가를 물었다. 그는 그들은 로터스의 씨앗(seed)들이며 나중에 나를 배의 로터스(Navel lotus)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 그후, 나는 배의 로터스로 향해 정진하였다. 처음에는 소르끼칠정도의 불길들이 나타났다. 몇일 뒤에 배의 로터스가 나타났다. 그것은 심장의 로터스와 비슷하였고 그 꽃잎들은 약간씩 다양하였다. 여러일 뒤에, (뱀위에 잠들어있는 비쉬느-Visnu) Sesasayi의 형태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뚜렷하지 않았다. 비쉬느의 배로부터 로터스 식물이 나왔고 브라흐마데바(Brahmade va)가 그 꽃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 그후, 스승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너에게 오늘 쿤달리니를 보여주겠다. 요가 수행에 있어서, 쿤달리니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너는 여기에 앉아서 Ganapati 아래로 들어가도록 하라' 나는 그렇게 했고 몇시간 뒤에 나는 Ganapati 훨씬 아 래 꼬리뼈 근처에서 삼각형의 구멍을 보았다. 격노한 불길이 그곳으로부터 튀고 있었다. 나는 신체의 여러부분에서 타는듯한 느 낌을 받았다. 나의 온몸이 땀으로 적셔졌다. 나는 이전에 불길들은 두세번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의 불길만큼 덥지 는 않았었다. 매일, 이러한 광경이 몇일 동안 계속되었다.그 후, 불길이 사라졌고 나는 확실히 삼각형의 구멍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개의 작은 파이브들이 서로 붙어 있고 그 구멍으로부터 나와 위로 향하고 있었다. 두개의 파이프사이에 파이프들과 같 은 크기의 속이빈 공간이 나타났다. 파이프들 아래에는 파이프 주위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검은 뱀이 보여졌다. 나는 이것에 관하여 스승에게 물었다. 그는 이것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 두개의 작은 파이프들은 두개의 신경인 에다(Ida)와 핑갈라(Pi ngala)이며 중간의 속이빈 관은 슈슘나(Susumna)이다. 이 세개는 주요 신경들이다. 우리가 코를 통하여 숨쉴때, 우리는 이 신경 들을 통하여 숨을 쉬게 된다. 너가 파이프 아래에서 보았던 뱀은 쿤달리니이다. 이 쿤달리니는 항상 일반적인 인간의 몸에서 잠 자고 있다. 그것의 입은 배의 입구 근처에 두고 있으며 그것은 항상 즙(nectar)를 삼킨다. 쿤달리니가 깨어날때, 사람은 요기가 된다. 쿤달리니를 깨우기위해서, 사람은 여러 제약사항을 지켜가면서 요가의 행로를 따라 매우 주의깊게 정진해야 한다. 쿤달리 니가 깨어나고 그것이 입이 위쪽으로 향해있지 않으면 사람은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쿤달리니를 깨우고자하는 사람은 커다란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쿤달리니가 슈슘나 신경을 통하여 위쪽으로 진행할 때, 사람은 점점더 힘을 얻는다. 나는 나중에 이것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우리 두개의 꽃잎을 갖고있는 로터스로 가보자.' " 스승은 나에게 이제 내가 나의 시야 위쪽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나는 코 끝과 양미간 중앙에 시야를 고정해 야만 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수행이 그 날로부터 시작되었다.... 몇일간의 수행후, 나는 두개의 꽃잎을 갖는 로터스를 보았다. 스승이 나에게 그 것을 설명하라고 물었을 때 나는 한쪽에 하나씩 꽃잎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마하라자 스승은 말했다. 그것 은 Dvidal(두개의 꽃잎을 갖고있는 로터스)이다. 그것은 스승의 자리이다. 우리가 우리의 스승인 Darasan을 원할 때마다, 우리는 그곳에 마음을 고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더 진행해보자.' 더 수행한후, 하나의 눈이 이마위에 보여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마하라자 스승에게 이 눈에 관하여 물어보았다. 스승은 그것이 Sri Sankar의 제삼의 눈이라고 말했고 더 정진할 것을 당부하였다 . 그는 덧붙여서 '내가 지금 너에게 이런 장소들 보여줄 예정이다. 너는 마음을 각 장소에 고정한체 그것을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하지 않으면, 너는 그 장소에 대한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이런 장소들을 보여주는 이유는 내가 없을 때 너 혼자 수행하여 너의 아스트럴체(즉,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할지라도 이것을 기억하면 그 고유의 장소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너에게 이러한 다양한 행로들 모두를 보여주었다. 이제, 나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너는 이 학습을 계속하여 인 간의 삶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해야한다. 절대로 너에게는 위험이 없을 것이다. 이제, 보여질 단 하나의 장소가 남아있다. 그것은 수천개의 꽃잎을 지닌 로터스로서 사하르라달라-Sahasradala 이다. 우리는 내일 부터 이장소로 정진할 것이다.' " 수행은 그 다음날 부터 계속되었다. 하나 또는 두개의 장소들이 보여졌다. 그러나, 그렇게 뚜렷하지는 못했다. 여기서 , 나는 그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 중에서 Om을 구별할 수 있다.... " 더 정진함에 따라 Om을 떠나게 되었을 때 먼거리에서 장엄한 사원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나는 일천개의 꽃잎을 지닌 로터스가 셀수없을 정도의 수많은 꽃잎의 모습으로 그 사원의 안쪽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그 것은 심지어 나의 내안(內眼)으로 바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와같은 초보자가 그곳에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빛은 푸른 색이었으며 휘황찬란하였다." 쿤달리니 요가 (Kundalini Yoga) H.H. Jaya Chamaraja Wadiwyar - Maharaja of Mysore 죤 우드라퓌 경의 저 "Serpent Power"을 환영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번 판에서 활용된 독특하고도 매우 도움 이되고 유용한 방법으로는 저자의 시문(verse), 인용, 말들에 대해 별도의 색인을 첨부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이 사려깊은 첨가 부분은 교사나 학자 그리고 일반 독자 모두에게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잘 정선되었고 삽화도 훌륭하며, 인도의 인쇄 기술이 최고라는 것을 알려준다. 인쇄공들이 이 책에 투자한 사랑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죤 우드라퓌 경에 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는 이미 알려진 인물이다. 우드라퓌는 인도의 위대 한 탄트라 사스트라(Trantric Sastras)에 관한 인도의 관심을 다시 작렬시킨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삶과 전통의 매우 큰 부분이 되어왔다. 이 분야에서의 그의 공로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힌두교의 주요 교리(doctrine)들 중의 하나라면 세계를 지배하는 궁극적인 힘(force)으로서 샥티를 숭배하는데 있다. 우리는 시바와 비스누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교리들을 유사하게 알고있다. 이러한 것들은 숭배가 받들여지는 여러가지 형태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신학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 중에 탄트라는 특히 샥티즘을 다르는 것으로서 철학적인 논문, 신학, 요가 수행, 의 식(ritual),변증학(dialectic) 등등을 포괄한다. 쿤달리니 요가는 샥티 탄트라의 가장 주용한 것중의 하나이다. 쿤달리니 요가는 요가 우파니샤드에서 이야기되며, 아가마스( Agamas)에서 이야기되며 여타의 신비주의 문학에서도 거론된다. 쿤달리니로서 알려져 있는 샥티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다. 쿤달리니 요가는 근원 중심부(root-centre)에서 또아리를 틀고있는 것을 요가 수행을 수단으로하여 깨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체내의 여섯개의 물리적인 중심부(center)를 통해 Bhujangi를 취할 수 있으며 결국 속박으로 부터 해방되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힘의 소유자인 시바"ther power-holder of Siva", 즉 청정 한 의식이라고 이야기 듣는다. 시바의 힘을 발현한 마음과 몸- '샥티 또는 母體(Mother)'과 비교해 볼때 그렇다. 그러므로 본 질적으로 사람은 시바와 샥티 양자의 본성을 지닌다. "그는 힘의 표현"-"He is an expression" 이라고 말한 다.아발론이 설명한 바대로 쿤달리니 요가는 자신 내면의 힘을 고양시켜 완전한 표현에 이르르는 수단이다. 그리고 무한한 경험 을 감지하는데 있어 완벽하다. 그는(the Sadhaka)는 그때 희열에 도달한다. 쿤달리니 요가는 성취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이며 과학적인 방식을 필요로 한다. 다르사나스(darsanas)와 이들의 의미를 특 별히 아드바이타(Advaita)와 관련지어 알고 이해하는 필요성이 극히 요구된다. 우드라퓌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사람 내에 존재하는 영(Spirit)는 모든것에 존재하는 완전한/절대적인/one 영(Spirit) 이며 숭배의 대상물/체 로서 그것은 영주-Lord/ Isvara 즉, 신(God)인 것이다. 마음과 물질은 많은 급(degree)와 질(quality)이자 그것을 갖고있다. 가령 아트마(Atma) 또는 영( Spirit)은 분절이 없는(Akhanda) 전체(Purna)이다. 마음과 물질은 전체에 있어 부분들이다. 그들은 전체가 아닌것(Apurna)이며 단편/분절체(Khanda)이다. 영은 무한하고(Aparicchinna) 무형(Arupa)이다. 마음과 물질은 유한하고(Paricchinna) 형태(Rupa)를 갖는다. 아트마(Atma)는 변화되지 않고 활동적이지 않다. 아트마의 힘(Sakti)은 마음과 물질의 형태에 있어 활동적이고 변화한다 . 청정 의식은 시트(Cit) 또는 샴비트 (Samvit)이다. Vedanta에 따르면, 가령 물질은 무의식이다. 그리고 마음 또한 무의식이다. 의식적인 자아가 아닌 모든 것은 무의식적인 대상(object)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식적인 자아가 아닌 모든 것이 그 자체로서 무의식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의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적인 자아의 대상이기 때문에 무의식인 것이다. *마음은 의식을 제한하여 사람이 유한한 경험을 갖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배경으로서 의 식이 없다면 마음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至高의 의식(Supreme Consciousness)은 마음이 없는 무심(Amanah)이다. 어떤 마음도 없는 곳에서는 어떠한 제약도 따르지 않는다. 한가지 측면에서 머무는 의식은 다른측면에서는 마음과 몸으로서 발현하는 활동적 인 힘으로서 변화한다. 그때, 사람(Man)은 마음과 몸으로서의 힘을 매개물로 하는 청정 의식-Pure Consciousness(Cit)인 것이다. 지바(Jiva)는 형체화된(embodied) 의식이다. 쿤달리니 요가의 잇점은 바로 이 형체화된 의식이 무한하고도 불멸의 의식을 자 각하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다. 쿤달리니 요가 그리고 일반적인 요가는 사람이 인생을 초월(초탈)하여 더 넓고 더 큰 존재의 삶으 로 들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즉, 이것은 세가지 존재의 상태들(Avasthatraya)을 학습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해탈(Liveration)은 우리가 깨어나는 그 근원을 깨달을 때 얻어진다. 요가는 창조의 역과정이다. 즉, 창조로의 회귀(return-move ment)인 것이다. "요가 과정은 그 근원으로의 회귀이며 이것은 근원으로부터의 창조적 움직임/이동의 역인 것이다." 산물(Production)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부디(Buddhi) 그 다음으로 아한카라(Ahankara), 아한카라로부터 마나스(Manas), 인드 리야(Indriya) 그리고 탄마트라(Tanmatra) 그리고 탄마트라로부터 뷰타(Bhuta). 근원의 자리로서 의식은 거대한 화면/전경(displ ay)인 두뇌가 인체내에 존재하는 것처럼 마음의 자리는 양 미간 사이에 있으며 물질의 자리들은 목에서부터 등뼈의 기반에 이르 는 다섯개의 차크라에 있다. 회귀의 시작은 여기서 이루어지며 다양한 유형의 물질은 용해되어 또다른 물질로 변화되며 그리하여 마음으로 바뀌로 마음은 이책의 5장에서 설명한 바 처럼 의식으로 바뀐다. 사람이 바로 이시점에서 지고의 상태인 희열(Bliss) 에 도달할 수 있느냐의 물음에 대한 요가의 대답은 'Yes' 인 것이다." 수양의 길에서 이 요가를 가속화하는데 도움이되는 과정들은 씨문자(seed-letter)들 즉 만트라(mantra)라고 하는 신비적인 공 식을 명상하고 인체내의 여섯개의 차크라(Satcakranirupana)와 라야크라마(Layakrama)로서 알려진 융해(dissolution)의 과정을 아는 데 있다. 영적 인도를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스승하에서 이러한 계단을 밟는 사람은 존재의 최고의 상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드라퓌가 진술하는 바처럼 "피상적으로 말하자면 주요 원리는 깨어날때 쿤달리니 샥티나 자체-친구가 이야기하는 바로는 샥티의 분신(eject)은 세계 의식을 지탱하는 정적인 힘으로 멈추어 있으며, 샥티는 잠을 자고 있을때만 만족감을 느끼며 , 일단 움직임을 시작하여 일천개의 꽃잎을 지닌 연꼿(Lotus), 즉 사하스라라에 있는 다른 정적인 중심부로 이끌려갈때, 그것은 직접 시바 의식이자 형태들의 세계를 넘어선 황홀감의 의식과 합일에 있게 된다. 쿤달리니가 잠에 들면 사람은 이 세계에 깨어난 다. 쿤달리니가 깨어날때, 사람은 잠이 든다. 즉, 이 세계에 대한 모든 의식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causal body로 들어가게 된다. 요가로서 사람은 무형의 의식으로 뛰어 넘는다." 이 책에서 chefs-d'oeuvre는 'Sat-cakra-Nirupana'와 Kalicarana가 해설을 단 'Paduka pancaka'라고 불리는 두 개의 샨스크 리어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이 웅대한 요가의 모든 세부분들을 취급하고 있는 훌륭한 논문집이며,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이들에 대한 중요성에 초점을 모을 수 있었던것은 다름아닌 이 한명의 위대한 영국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드라퓌의 번역이나 노트들은 우리가 원했던 것이며 그것은 진정한 애정어린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번역서에 대해서는 그 외의 다른 것은 이용할만하지 못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인도의 신비주의에 관심을 갖는 모든 학생들은 주의깊게 이것을 학습하여 자신 들의 지식을 배양할 것을 바라는 바다. 탄트라의 중요성은 이제 잘 인정받고 있으며 인도의 사상에 있어 그들의 지대한 역할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샤트-챠크라-니 루파나'에 나오는 52번째 시문은 이렇게 전한다: Nitva tam kulkundalim layavasajjivena sardham sudhir, mokse dhamani sudhapadmasadane saive paresvamini Dhyayedistaphalapradam bhagvatim caitanyarupam param, yogindro gurupadapadmayugalalambi samadhau yatah. " 황홀에 빠져 그의 스승의 연꽃발(Lotus feet)아래 경배한 지혜롭고 훌륭한 요기는 지바와 함께 쿨라-쿤달리니를 청정 한 연꽃(pure Lotus)안의 해탈의 거주지에 있는 그녀의 영주-파라시바(Para-Siva)로 인도하여 카이탄야루파-브하가바티(Caitanya rupa-Bhagavati)로서의 모든 욕망을 부여하는 그녀에 관해 명상해야 한다. 따라서, 그가 쿨라-쿤달리니를 이끌때 모든 것을 그녀 속으로 흡수되도록 해야만 한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모성애의 보호로부터 벗어난 어머니의 자궁으로 흡입되는 것이 이 쿤달리니 요가의 목적인 것이다. 그 러한 지고의 철학은 우리의 탄트라 이면에 존재한다. 쿤달리니여, 우리가 올바르고 합법적으로 속한 브라만(Brahman)의 자궁으 로 다시 빨려들어갈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소서. - The Hindu 힘의 신비적인 중심부들- Subtle centres of power DR. C. P. RAMASWAMI AIYAR 우리가 우리 유산의 중요함과 의미를 직시하지 못한 과거 어느 기간에 바쁘게 우리 자신을 서부화속에 매몰시켰고 그 과정속 에서 우리의 성전에 깃들여있는 철학적이고 실용적인 교훈들을 무시하였을때 몇몇의 열광적인 유럽 학자들이 우리에게 우리 과거 의 의미를 깨닫도록 해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도는 죤 윌리엄 죤스경, 콜래브로케경, 모니어 윌리엄즈경, 막스 뮐러경을 포함한 여러 학자들과 독일, 러시아, 프랑스 미국등의 학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지고 있다. 이러한 학자 들은 우리의 고대 문학을 학습하여 이를 번역하였고 주석을 다는데 아낌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그리스챤 민족정신을 열렬히 신봉하였으며 다른 신념들이나 샨스크리트, 타밀 그리고 다른 문학들에 대 하여 그들의 태도를 다소 후원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두가지 구별되는 예외로 닥터 애니 비산트와 죤 우드라퓌 경이 있 었다. 우드라퓌 경은 한동안 칼큐타 고등법원의 재판관이었으며 아더 아발론(Arthur Avalon)의 필명으로서 글을 썼다. 우드라퓌 경은 자신의 공직에서 시간을 낼 수 있는 때는 항상 힌두 철학에 몰두하였고 특히 탄트라 서적이나 해설서를 연구하는데 열중하 였다. 그는 그의 아내의 열렬한 도움을 받는 행운을 얻었으며 탄트라 사스트라에 관해 만연하는 무지를 일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세계사상에 대한 탄트라 고유의 공헌을 역설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위하여 그의 사명감의 일환으로서 일을 하였다. 그가 40년전에 발간한 'Sakti and Sakta'에서, 인도의 문화와 문명에 관하여 만연하던 잘못된 여러개의 개념들을 개종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내가 인도인이라면 결코 나의 영혼을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삶은 모든 활 동에서 자신을 잘 보여주어 왔다. 그것은 종교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철학의 인간으로서 명상하였을 뿐아니라 모든 활동 분야에서 역할을 해 왔다." 현재의 책 'The Serpent Power'에서 뿐만아니라 여러 에세이 모음집에서도 그는 "진정한 삶은 창조적이고 세계적 영혼(W orld-soul)과 합치를 이행한다. 인간은 파워를 지닌 잡지책과도 같다. Devi의 몇가지 측면에서 Devi에 대한 봉헌은 전통적인 의 식(위빠사나-Upasana)의 형태보다 훨씬 더 숭배적이었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모든 존재의 본질인 삶, 그리고 그 삶이라 는 즐거움을 해탈에서의 즐거움과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Mukti에서 처럼 합일은 Bhukti내에 실제(Reality)로 이루어 질 수 있 다고 단언한다. 애국심은 숭배의 한형태로서 고양되었으며 우드라퓌는 모체에 대한 봉헌이 진정한 애국심이며 진정한 인도애와 모순되지 않는 종교의 측면이라고 확언하였다. 현재의 책은 'Sakti and Sakta'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출간된 6번째의 작품이다. 이 책은 쿤달리니 샥티의 발현에 관한 요가 를 설명하고 해설하고 있다. 두개의 샨스크리트 작품들인 신체의 에너지 중심부를 다룬 Satcakra-nirupana와 요가라는 형태의 테 두리에서 스승이 해야할 역할로 구성된 Paduka-pancaka가 번역되었다. 이들에 관하여 벵골어 주석 다음에 우드라퓌는 자신의 해 설과 주석을 추가하였고 그 책을 세밀히 정선하고 삽화를 추가하였다. 이러한 요가 형태를 Laya-Yoga라고도 말하며 이 작품은 형 체화된 특성으로서 그리고 비형체적 특성에서 의식을 다룬다. Sabda(소리)의 근간이 되는 사상과 기능 즉, 소리의 비밀을 형체화 한 것으로서 문자들인 Varna 와 만트라를 설명하였으며 저자는 사상의 창조적 힘은 세계에서 점차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지적 하였다. 마음과 같이 사상은 힘(샥티)으로서 설명된다.Sabda 즉 소리로서 발현되어 만트라로서 극점에 도달하는 사상은 별도의 장으로서 다루고 있다. 우주는 동형(Mula-Prakrti)로부터 이형(Vikrti)로의 전개(Srsti)이며 Pralaya(융해)로 소급한다는 인도 성전들의 기반을 이루 는 사상은 바로 "비형체 의식=Bodiless Consciousness"라고 타이틀을 단 장의 토픽이다. 그리고 저자가 헉슬리(Huxley ) 교수- 저명한 불가지론자-를 인용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즉, 그는 "우주 에너지의 발현은 잠재성의 단계들과 논리적 분석의 단계들 사이를 교대로 바꾸어간다."라고 진술하였다. 탄트라와 특히 쿤달리니 요가(그는 서펀트 파워라고 호 칭함)가 내면적 즐거움을 착고 블랙 메직을 추가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는 흔히 거론되는 잘못된 표현을 반박하며 우드라퓌는 결코 망각해서는 안될 진리를 이렇게 진술하였다:" 이 요가나 여타의 요가를 수행하는 인도사람은 신비주의에 관련을 두지 않으며 요술이나 비슷한 체험을 수행하고자 하는 욕망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가 그 수행의 존재를 Atman Brahman을 추가 하는 일부로서 믿고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스템들은 의식이나 그것의 상태들에 대하여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브라마(Brahma), 비쉬느(Visnu) 그리고 시바(Siva)는 실로 우주 의식의 여려 기능들을 명명하며, 요가는 의식의 하위/저급 상태를 상위/고급 상태로 변형하는 데 활용되 는 수단들 중의 하나이다. 쿤달리니 요가의 목적은 인체내의 다양한 차크라(중심부)에 퍼져있는 에너지의 존재를 깨닫고 이를 자극하는 것이며 이 차크라들의 잠재력을 집중시켜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차크라들은 모여져서 또아리를 틀고있는 독사'S erpent'의 이상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독사가 또아리를 풀어헤칠때 힘의 저장소'Power Reservoir'를 발현하게 된다. 저자의 이론을 요약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몇개의 문장들을 이 책의 서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발현하는 모든 것 은 샥티 즉, 힘이다. 힘은 힘의 보유자를 의미한다. 힘의 보유자는 시바이다. 그 힘은 샥티 즉, 우주의 거대한 모체(Mother)이다 ." 만트라와 요가에 의해 자극받는 챠크라들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샥티들의 신체내의 신비스런 작용의 센터들이며 신체의 외피를 구성하는 다양한 Tattvas 즉, 원리들의 힘이다. LayaKrama 또는 어떤 형식화된 수행들로서 만트라나 하타요가 또는 나야 요가를 이용하는 사람은 Samadhi의 준비가 된 것이다. 이 요가의 이론적 기반들-"Theoretical Bases of This Yoga"라는 타이틀을 지닌 장에서, 쿤달리니 요가는 정적인 조건으로부터 동적이고 깨어있는 상태로의 쿤달리니-샥티를 각성시킴으로서 인간내의 무한히 잠재된"coiled" 힘의 부 분적 전환으로서 설명된다. 저자의 결론은 다음의 역설적 형태로 진술된다: "쿤달리니가 잠들때 인간은 이 세계에 깨어난다 . 그녀가 깨어날때 인간은 잠이든다. 즉, 그는 모든 의식을 잃고 무형의 의식으로 들어간다." 상기의 두 작품들의 초반부의 번역은 명료하고도 이해하기 쉽다. 즉, 탄트라 사스트라와 특히 이 책에서 설명한 나야요가와 라 자요가의 형태들은 언어나 관점에있어 매우 기술적이다. 그러나 죤 우드라퓌경의 명료한 사상과 표현력에 의해 샨스크리어트에 친숙하지 않는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영적 투쟁의 어떤 분파도 카스트와 일반 사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인 종과 인종간에 구별을 두지 않는 탄트라 사스트라의 어떤 측면들만큼 수행자의 필요성에 제대로 맞추어지지 못한다. 물질적인 힘 (Kriya Sakti)는 규율화된 지식(Jnana Sakti)를 수반해야 하며 초래되는 행동은 저자가 여러곳에서 힘의 종교-정의의 편에 맞추 어진 힘이며 삶의 진화하는 영혼과 조화를 이룬 힘-이라고 하는 것에 의해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을 탄트라는 전제로 하고 있다. 대중은 가지고 다니는데 있어 즐거움이자 숙독하는데 기쁨인 이 판의 출간을 환영해야 한다. 한편, 가치는 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기가 없는 Saundarya Lahari와 같은 다른 책들이나 죤 우드라퓌 경의 책들을 대중적인 딜럭스 판으로 이용할 수 있도 록 해 준 그들의 기업가 정신에 대해 Messrs. Ganesh &Co. 사의 발행인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 The Sunday Standard THE SERPENT POWER - 독사의 힘 Sri K. Guru Dutt 위대한 재판관이자 학자인 죤 우드라퓌경이 아더 아벨론이라는 필명으로 편집한 중요한 탄트라 작품의 여섯번째 판이다. 탄트 라 학습은 서방에서 뿐만아니라 오랜동안 인도에서 신임을 받지못했다. 그들의 명성을 되찾고 진가를 인정받게 된 것은 주로 그 의 기념비적인 노력에 있다하겠다. 그는 인도 종교와 문화의 가장 오도되고 오해된 측면들 중의 하나를 과감하게 쇄신하고 증흥 시킴으로써 인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의 작품들은 수행(Sadhana) 즉, 체험 종교의 효험에 대한 신 념을 되찾게 해준 선구자로서 입증되었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영어로는 처음으로 영혼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였고 그것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려고 하였다.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오랜동안 지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Untouchable'로 간주되었던 영역속에 매진함으로써 자신의 국민들사이에 자신을 "지적인 추방자"와 같이 만들어 버린 이 용감한 개척자에게 존경의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쿤달리니 샥티 그리고 그것의 개발과 관련된 수행-Sadhana에 대한 설명이자 해설이다. 사드하나는 탄트라 사스트라 의 체계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과정을 기술적으로 Sat-cakra-bheda 즉, 쿤달리니 샥티의 대리자들로서 존재하 는 6개의 챠크라 또는 로터스들(Padmas)를 관통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인체에 존재하는 지고의 힘을 여신(Devi)로서 상징화한다. 이 여신은 그녀가 깨어나 6개의 챠크라들을 관통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Sahasrara 챠크라에 도달하여 희열의 최고 정점에 이르게 될때까지 척추의 기반에 위치한 Muladhara, 즉 최하위 몸중심부에 쉰채로 또아리를 틀고있는 작음 뱀으로서 상상되는 쿤달리니 이다. 물론, 어떤 형태의 Sadhana를 실제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입문하여 모든 단계에서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유능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중요한 사실이다. 이와같은 모든 서적들은 입문에 대한 관심을 깨우치고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이며 모든 수행을 단순한 메카니즘으로 퇴화시키거나 전락시키지 않도록 이해의 공고한 배경을 제공하는데 있다. 해설을 담은 두개의 샨스크리트 작품들의 원본들인 Sat-cakra-Nirupanam과 작은 분량의 Paduka Pancakam은 이 책의 3분의 1을 구성한다. 정교한 참고사항이나 상세한 내용과 함께 로마 필체로 다시쓰여진 주요 시문들을 포함하는 이 두개의 작품의 영문본 이 'Serpent Power'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편집자의 주요 기고는 300 페이지 이상에 걸쳐 전체적인 주제에 대하여 충분 한 식견과 배경이 될 내용을 제공하며 무엇보다도 의식의 본성을 비형체적인 것으로 그리고 형체적인 것(만트라 발성력)으로 다 루며, 중심부 즉, 로터스(챠크라 또는 Padma)를 다루며 이 요가의 이론적 바탕과 함께 실제적인 근본을 제공한다. 가치있는 영어 와 샨스크리트 색인들은 여러개의 챠크라를 묘사하는 칼라색 인쇄지와 함께 이책의 그림을 장식하고 있으며 요가사나스(Yogasana s)를 그려놓은 사진블럭들도 가미시켯다. 이 책은 주옥처럼 다듬어졌으며 인도의 종교나 철학의 신비주의적 측면들을 다루는 일 련의 작품들을 발간함으로써 인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발행인들의 기업가 정신에 어느정도 빚을 지고 있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 이 없었더라면 인도의 종교나 철학은 아직도 묘연한 상태로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첫번째 판은 M/s Luazc and Co. Lo ndon 에서 발간되었으며 기대했던 것보다 빠른 판매를 보였다. 제 2판은 상당히 개정증보 되어서 현재의 발행인들에 의해 출간되 었다. 이 책이 제 6 판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인도의 종교적인 철학과 수행(Sadhan)의 심원한 측면들에 관심의 증대되고 있다는 전조이다. Sadhana의 이 형태는 비교적 최근에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이다. 가령, 요가의 형태가 뿌리를 내린 토양을 제공 하는 Nadi 상징주의는 초기의 우파니사드(Upanisads)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에, 이 주제를 철저하게 취급하는 요가 우파니사드 가 생겼다. 이것은 Puranas의 몇몇으로 그리고 Saundarya Lahari(Sri Sankaracarya의 것으로 추정되는)와 같은 다른 명서들로 제 창되었다. Saundarya Lahari의 딜럭스 판이 최근 현재의 발행인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도입부의 마지막 부분을 구성하는 이론적 배경은 60페이지에 달하며 이 주제를 모든 측면에서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깊이있게 고찰하려면 짧은 지식의 한도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박식한 편집자가 이따름 강조하는 것처럼 어떤 형태의 Sadhana건 그것의 진가는 그것의 오랜된 전 통에 있는 것이 아니며 전통과 함께해 온 이름의 위대함에도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도덕적 소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로 실제적인 효험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요한 그리고 단지 검증만이 Sadhana가 Siddhi(수행)을 이끌 수 있 는가 없는가이다. 또한, '푸딩의 맛을 알기위해서는 먹어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흔히 인정되고 있는 종교나 철학 의 그러한 유사한 점들과는 별도로 신비주의(occult) 또는 숨겨진 종교가 존재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고대인들이 행한 고찰들은 단지 우리가 그들의 연구를 학습할 가치를 지닌 것으로 존경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하극상의 미신주의로서 배척하 고 미숙한 외국 학자들의 선봉을 따름으로써 그들의 지적인 유산을 이 인도에 들여놓지 않는다면 우리 현대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의 우리시대에 있어 Sri Ramakrishna Paramahamsa와 같은 뛰어난 수행자들도 그들 자신의 체험에서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진실성과 타당성을 증명하였다. 물리학에서 이루어진 괄목할만한 진보의 혜택으로, 정신 체험학이 과거 우리의 땅에서 거대한 진보를 이루었으며 우리는 그들의 복원을 꾀하고 양성시킬 천부적인 재능을 소유하고 있으며 단지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 는다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갈망의 종착점 을 향해서 현재 무한한 도움의 근원이 되는 출판물들 이 존재한다. - Vedanta Kes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