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라문계 철학
** 육사외도 (積聚說)
불교가 출현할 무렵 바라문이나 사문들이 품고 있었던 사상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불교에서는 이들을 62가지 견해로 그리고 자이나교에서는 363가지 견해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분류는 당시의 사상계에 얼마나 많은 견해가 만연하고 있었는가를 나타내는 한 단면이 된다. 이들 중에서 초기불교의 문헌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여섯 사상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푸라나 카사파(Pūraṇa Kassapa, 極端的 倫理 懷疑論); 선악은 사회적 관습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선행을 하든 악행을 하든 거기에 필연적인 인과응보는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그것이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며, 아무리 선행을 하더라도 그것이 복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도덕의 부정을 주장했다. ⇒ 윤리적 회의론
②마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 極端的 必然論); 모든 생물은 地․水․火․風․虛空․得․失․苦․樂․生․死․靈魂 이라고 하는 12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행동이나 운명은 모두 자연적인 법칙에 의하여 이미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선한 행위를 하건 혹은 타락한 행위를 하든 인과적 효력이 없다는 숙명론을 제창하였다. 자연적으로 결정된 윤회전생을 무수히 반복하다가 보면 마침내 해탈하는 날이 저절로 온다고 보았다. 불교경전에서는 이를 邪命外道라고 부른다. ⇒ 기계적 운명론
③아지타 케사캄바린(Ajita Kesakambalin, 快樂主義的 唯物論); 地 · 水 · 火 · 風의 4원소만이 실재한다는 유물론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죽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까닭에 도덕적 행위의 무력함을 주장했다. 즉 죽기 전에 잘 먹고 잘 노는 현실적 쾌락 밖에 인생의 목적은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물론적 전통은 그의 이후로도 계속 존속했는데 이것을 ‘로카야타(Lokāyata)’라 하며 불교경전에서는 順世外道라 번역한다. ⇒ 단멸론적 유물론(쾌락주의, Cārvāka)
④ 파쿠다 카차야나(Pakudha kaccayāna, 機械的 唯物論); 地 · 水 · 火 · 風의 4원소 이외에 苦 · 樂 · 生命을 추가하여 절대 부동의 7요소 실재를 설했다. 이들 7가지는 불변․불멸이기 때문에 인생의 결정적인 소멸은 없다. 칼로 목을 치더라도 결국 칼날은 요소들 사이의 공간을 지나갔을 뿐 생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불변하는 요소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고방식은 후에 정통 육파철학(六派哲學)의 하나인 바이세시카(Vaiśeṣka)로 계승 발전되었다. ⇒ (유물론적 상주론)
⑤ 산자야 벨라티픗타(Sañjaya Belaṭṭhiputta, 不可知論); 회의주의자로서 어떠한 질문이 주어지면 그에 대하여 불확정적이고 애매 모호한 답변만을 하였다. 그러나 근저에는 지식에 대한 회의와 불가지론이 있었다고 보여지며 논리학에 대한 반성도 있었던 것으로 인정된다.
예컨대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일체의 판단을 중지하던가 혹은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제각기 소신대로 말하면 그것이 곧 진리라고 보았다. 즉 “내세와 인과응보가 있느냐”라고 물으면, “있다고 생각하면 있다고 대답하겠는데, 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후에 석존의 제자가 된 사리불(Sāriputta)과 목건련(Mahāmoggallāna)이 원래는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⑥ 니간타 나타픗타(Nigaṇṭha Nātaputta, 嚴肅主義, 苦行主義); 자이나교의 개조인 마하비라(Mahāvīra)이다. 자이나교는 신체적인 속박, 즉 육체적인 욕망이나 본능을 극복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 때문에 엄격한 계율을 실천하였고 특히 살생을 금하며 또한 무소유를 강조하여 의복까지 버리고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이나교는 존재론적으로는 생명(jīva)과 비생명(ajīva)의 이원론이며, 인식론적으로는 不定主義(syāvada) 혹은 相對主義(anekāntavada)로 특징지을 수 있다. 순수한 생명인 본래의 깨끗한 靈性이 흐려져 윤회의 속박에 매이는데, 이 속박을 풀기 위해서는 고행을 통해 이전에 지은 모든 업을 소멸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수행이 완성되면 미세한 물질 입자로서의 업이 생명으로부터 떨어져 止滅되고(nirjara) 마침내 生과 死를 벗어난 경지인 涅槃(Nirvāṇa)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이들 육사(六師)의 주장은 당시 사상계의 다양성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선악의 행위가 그 결과를 가져오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에 관한 것이었다. 즉 ‘업과 과보’에 관련된 문제이다. 당시 사상계는 이러한 문제 이외도 ‘자아에 관한 문제’ ‘세계에 관한 문제’ ‘실천 수행에 관한 문제’ 등 여러 분야에 거쳐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 Cārvāka 철학의 개요와 인식론
앞에서 소개한 육사외도의 아지타 케사캄바린(Ajita Kesakambalin)이 이 전통에 속한다. 인도의 유물론을 대표하며, 갖가지 비베다적 철학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기적으로는 대체로 붓다 이전의 중․후기 우빠니샤드 시대로 소급된다. 전통적으로 Cārvāka라는 성인이 이러한 인도의 유물론을 창시했다고 한다.
Cārvāka라는 말은 √carv에서 파생된 말로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자’라는 뜻을 지녔다. 인도 유물론은 또한 ‘세인들의 견해(Lokāyata mata)'로도 알려져 있다. 이 학파의 저작은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교설은 전적으로 타 학파의 견해에 바탕하고 있다.
이들의 견해는 고유의 인식론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들은 직접지각(pratyakṣa)만을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자 기준(pramāṇa)으로 보았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인도철학의 학파들이 타당하다고 여기는 2가지 인식의 원천 즉 추리(ānumāṇa)와 증언(śabda)을 부정하였다.
또한 이러한 인식론적 관점으로부터 연역적 추리와 귀납적 추리라는 구분을 거부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들 모두를 부당하고 신빙성 없는 지식으로 보았다. 예컨대 연역적 추리양식의 일례인 삼단논법(syllogism)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한다.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
㉡모든 희랍인은 사람이다.
㉢따라서 모든 희랍인은 죽는다
여기에서 ㉠과 ㉡이라는 명제가 진리임을 모르는 한, ㉢이라는 명제 또한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논리적 비약, 즉 미래도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가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정당화시킬 아무 것도 우리의 경험 가운데 없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르면 연역적 추리와 귀납적 추리양식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즉 귀납추리의 패턴으로서 “특수한 사람들인 X, Y, Z가 죽는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명제에서 특수명제를 기초로 한 보편명제의 타당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사실도 알 수 없고 “㉡모든 희랍인이 사람이다”는 사실도 증명되지 않으며 이들 2가지 명제를 바탕으로 한 “㉢모든 희랍인은 죽는다”는 사실도 입증할 수 없다. 요컨대 연역적 추리와 귀납적 추리양식 모두는 불확실하고 신빙성이 없다.
유물론자는 소위 불변적 관계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주장명제의 보편성을 수립하는데 무용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불변적 관계로부터의 논증은 실제로 지각되고 또한 지각 가능한 것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제한적인 경험 사실에 의한 진술로부터 무제한적이고 무제약적인 보편적 일반화로 비약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유물론자는 이론적 차원에서 추리를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사람과 그를 둘러싼 사물과의 일상적 교섭 가운데서 그 자신도 추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추리가 인식의 원천으로서 부당하다는 유물론자의 철학적 견해는 생활 속에서의 그 자신의 실천과는 양립하지 않는다.
예컨대 유론자가 자신의 이론을 가르친다고 할 때 그의 말은 단순히 소리나 음성으로 밖에 지각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즉 개념이나 관념의 상징으로서의 말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때 말의 의미는 기억에 의존하며 그러한 기억은 직접지각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러한 문제 이외에도 그들은 추리를 거부한다고 주장하면서 지각만이 신뢰할 수 있다는 일반화를 은밀히 추리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화는 스스로의 지각 이론과 모순되는 것임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그들은 지각은 신뢰할 수 있다는 일반화의 기초 위에서 오직 지각만이 믿을 수 있다는 순환론적 논법의 오류를 범한다.
인도 유물론자의 형이상학은 지각만이 믿을 만한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인식론적 주장과 직접 관련된다. 신이며, 영혼, 천국과 지옥 등은 우리의 지각적 경험에 기반을 가지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서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에 따르면 세계는 地․水․火․風의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이들 원소가 여러 가지로 배합된 결과이다. 지각만이 유일한 인식수단이라는 그들의 교설에 따라 짜르와까는 타학파에서 물질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는 空(ākāśa)을 거부한다. 아까샤란 지각될 수 없고 단지 추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 혹은 마음은 물질의 부산물이다.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신이나 혹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에 호소하는 것은 무지로부터의 논증에 불과하다. 더불어 신이나 창조자 따위도 지각능력을 넘어선 존재인 까닭에 거부한다. 물질은 언제나 있어 왔고 또 계속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물질만이 우주의 질료인이자 효과인이다. 그들은 바로 이점에서도 추론과 독단의 오류의 범한다.
윤리와 행위에 관해서 유물론자들은 쾌락주의를 표방한다. 그들에 따르면 쾌락의 추구와 세속적 재물의 향수가 삶의 유일하고도 의미 있는 목적이다. 죽은 다음 다른 곳에서 더 크고 영원한 즐거움의 상태를 발견하리라는 희망으로 금생이 제공하는 쾌락을 포기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조야하고 이기적인 쾌락주의와 세련되고 이타적인 쾌락주의를 구분한다. 더불어 쾌락의 질적 차이를 구분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법과 질서, 그리고 자신의 쾌락이나 즐거움을 이웃과 나눌 필요도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고대 인도의 짜르와까와 고대 희랍의 에피큐리언은 많은 점에서 놀라운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양자 모두 자제와 분별력, 세련된 취미, 그리고 순수한 우정에 대한 능력으로 알맞게 순화된 쾌락주의를 표방하는 철학적 유물론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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