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어릴적 초등학교 1학년쯤
- 대통령이였던 박정희가 죽었다.
- 그 당시 나의 유일한 정보의 제공자였던 어른들은
- 다들 그를 매우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했고
-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였다.
-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는 학교의 분위기에 발맞춰
- 박정희의 영정이 모셔진 면사무소까지 전교생이
- 모래 먼지가 이는 비포장길을 걸어서 행진하였다.
-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우리 어린아이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 앞으로의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 슬픔으로 4Km 가 넘는 먼길을 걸었었다.
- 단 몇분의 영정 앞에서의 묵념을 위해
- 우린 뜨거운 햇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걸으면서도
- 얼마나 순진한 모습으로 슬퍼하였는지.
- 묵념을 할땐 눈물까지 나오기도 했으니...
- 그로부터 얼마 후 엄마를 따라 갔던 마실 길,
- 광주에 친척이 살았던 동네의 떠벌이 아주머니는
- 광주에선 사람이 마치 개 돼지처럼 죽어가며,
- 무수한 사람들의 시체를 포크레인으로 치워야할 지경이며
-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서 뱃속의 아이를 꺼낸다고도 했다.
- 그때 들은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
- 뱃속의 아이를 꺼내어 들고 웃고 있는 남자...
- 믿을 수 없는 얘기였고 잊혀지지 않을 이름 석자 였다.
- 그날 이후 나는 광주의 얘기를 보기 위해 메일 TV앞에 앉아
- 저녁 뉴스를 보았다.
- 그러나 어느 방송국에서도 광주의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 그녀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 그녀는 어린 나에게 믿음직스럽지 못하게 보였으며,
- 그러한 일이 텔레비전 9시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 역사는 늘 그렇게 대부분의 무관심의 틈속으로 흘러간다.
- 자신의 일이 아닐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 그러나 나는 곧 광주의 그 사건이 거짓이 아니였음을 알게 되었고
- 더 이상 뉴스나 언론이 사실의 전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그리고 곧 나는 세상은 우리가 알수 없는 어떤 커다란 권력의
-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 그들의 필요에 의해 우리는 정보에 노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세상의 모든 소식을 전달하는 텔레비전의 멋진 아나운서들은
- 보이지 않는 자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서의
- 앵무새에 지나지 않으며,
- 학교의 선생들은
- 그리 유익해 보이지 않는 정보의 전달자로서의 역할뿐이라는 것을...
- 그리고 우린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돌아가게 하는
- 아주 작은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 이 모든 것을 신이 관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신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 나의 의문에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는 그 신이란
- 존재에 대한 반항으로 나는 나를 죽이는 것으로 복수하고 싶었다.
- 어린 계집아이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 나약한 존재로서의 그런 신은 죽어야 했다.
- 더 이상 이런 원치않는 꼭두각시는 싫었으니까..
- 나는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으니
- 나의 죽음을 나의 의지로 선택할 권리를 신에게 보여주자고.
-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평화로웠다.
-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대지의 숨결을 마시며 살아있다.
- 그리고 인간이 만든 신을 죽였던 나보다 더 오래전 살았던
- 니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 금기된 것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자극적인 엑스타시인가.
- 누군가의 각본에 짜여진 연극의 엑스트라이면서
-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믿고 사는 우리들...
- 세상은 그대로 잘 돌아간다.
- 나와는 상관없이
- 그래서 나도 열심히 시계부품의 삶을 살아간다.
- 그러나 예전의 나는 아니다.
-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안의 어떤 것을 나는 신뢰한다.
- 죽음이 두렵지 않듯이 세상의 권력이 두렵지 않다.
- 가끔 내속의 어떤 것이 불쑥불쑥 뜨겁게 일어난다.
-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 생명있는 것은 모든 것은 그 존재 자체로
-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노마드가 되어 인터넷을 떠돈다.
- 그리고 나와 같은 또 다른 노마드를 만난다면
- 기꺼이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내가 가야할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2004년 6월 4일 아침에 오월 광주를 생각하며
10대의 나에게 자살은 하나의 큰 화두였으며
내가 나를 죽이는 그 순간 나는 매우 평화로웠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가장 치열하게 존재의 근원을 생각했던
나의 10대는 가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그 자체였고
가장 외로웠으며, 가장 아팠으며,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때의 내게 손을 내밀었던 얇은 요가책 한권과
정신세계사의 정신세게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므로 지금의 삶을 즐겁고 가볍게 살수 있는 나가 되어
자신의 존재의 대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고
어린 나를 보듯이 웃을 수 있는 것이리라.
자신의 전 존재를 다 던져 대답을 찾지 않는다면
명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깨달았다.
가끔 아주 가끔 꿈처럼 그렇게 확실하지 않는
그 무엇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알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내가 가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본질에서 멀어질때
이 세상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또 다시 일어나고 만다...
오월에서 푸른 시월까지
손현숙 (1969-그룹 천지인 보컬 )
출처 : 아름다운요가카페
글쓴이 : 살로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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