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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이여, 농민들과 연대하라

파르헤지아 2006. 5. 4. 08:50
"스타들이 진정한 '희망의 별'이 되려면" 

  [기고] 영화인들이여, 농민들과 연대하라

  2006-02-16 오후 2:15:43     

 

 

  문화는 종 다양성이 보장되는 곳에서 발생하는 자연 속의 화원이다. 종 다양성이 존재하는 자연의 터전이라고 해서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계의 생물들은 무한히 다양한 개체의 그물망이 망가질 정도로 약자를 탐식하지는 않는다. 먹이사슬의 존재야말로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서 생태적 기본조건 아래에서만 생존하고 서식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인식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영화는 산업이 아니라 문화이며 스크린 쿼터의 축소는 바로 반문화적 폭거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민족문화에 대한 자존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로서의 영화가 생래적으로 갖고 있는 생태론적 존재기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서구적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해 별개의 것인 양 인식되는 자연과 문화는 발생론적으로 부모-자식 지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배제한 문화는 생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연은 문화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자연은 단순히 스펙터클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이유로 한 개체로서 자연스런 성장을 방해받고 있는 존재, 사회적 인습과 지배이념에 의해 자연스럽지 않은 개체로 낙인찍힌 존재, 또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인위적으로 잊힐 것을 강요받아 온 존재들을 스크린 위에 재현할 때 영화는 단순히 자본에 의해 육성되는 오락산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한국 영화가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서는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서동만 교수가 잘 정리해놓은 바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는 산업이기 이전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문화로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말하자면, 할리우드 자본이 생산해내는 영화의 상상력이 닿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에서 한국 영화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 영화인들이여, 농민들과 연대하라

 

  이제 한국 영화가 자본의 제단 앞에 바쳐지는 희생양이 될 운명에 처해 있다. 자본이라는 신과, 자본을 자신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국가, 그리고 이들의 나팔수인 언론에 의해 치러지는 희생제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영화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상당수의 한국 영화는 자연성을 거부당한 사회의 약자들을 작품 속에서 재현시키는 일을 해 왔다.

 

  한국 영화의 유통망을 옥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결국 영화 속의 약자들의 모습을 지우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한국 영화도 그들과 같은 약자가 되고 있다는 점을 한국의 영화인들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는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그려냈던 다른 약자들과 함께 공동의 운명체임을 깨닫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앞으로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면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직업군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항하여 이들과도 연대망을 형성해야 되겠지만, 그보다 앞서 스크린쿼터 문화연대는 한미 FTA 협상의 일차 타깃으로 부각되고 있는 또 하나의 직업군인 농민들과의 연대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시장개방 정책에서 가장 큰 피해를 강요당해 온 농민들에 대해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던 영화인들이 자신들에게 문제가 닥치자 저항한다는 여론을 의식해서 그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농사란 문화와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발생론적 친연성을 입증하는 인간의 존재양식이다. 지역별 풍토와 기후에 맞는 곡식과 채소를 길러내는 종 다양성의 산실이 바로 농업이라는 인간의 활동이다. 농업이라는 직종의 성격상, 농업은 지역에 뿌리내린 토착적인 생태와 문화를 지키는 물질적 토대이기도 하다. 전 지구를 활동범위로 하는 '디지털 유목'이 정보화 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이자 지적인 패션이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자본의 유동성이라는 생리를 충족시키는 탈근대적 유목은 삶의 미세한 숨결까지도 돈 냄새를 풍기게 만들고 있다.

 

  오랜 시간, 지역의 풍토에 적응하며 성장해 온 지역민들의 순환적인 삶과 문화는 그 자체로 농(農)적이며 그 물적 토대는 농업이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근대의 막바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터득한 지혜다. 비록 산업혁명 이후 농경문화는 쇠퇴일로를 걸어 왔고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모름지기 진지한 인간의 문화활동은 잊히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 자체가 벌써 문화의 생태적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농업과 문화의 황폐화는 '동전의 양면'

 

  영화인들은 우리 정부가 세계인들과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을 준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문화는 일반 상품과 달리 결코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문화는 정신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으므로 상품화시킬 수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단순히 정신주의적 관념론으로 그쳐버린다면, 결코 영화판 바깥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정신이라는 것도 생명현상이므로 몸을 입어야 비로소 생명의 흐름이 생겨날 것이다. 영화판의 정신이 주목하여 재현시킨 그 대상들이 영화 밖 현실에서 영화판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 영화의 정신적 가치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농사꾼들의 노동과 삶은 다양성 상실의 위기에 처해 있다. 산업문명의 온갖 병폐는 산업논리에 의한 농업의 희생에서 비롯되었다. 농업의 피폐화는 농업과 농사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의 자기증식 논리에서 비롯된 농업의 황폐화는 궁극적으로 문화적 삶을 지향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 마련이고 이제 한미 FTA라는 형태로 영화판의 사람들까지 괴롭히고 있는 형국이다. 얼마 전 홍콩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를 반대하기 위해 홍콩까지 건너간 우리의 농민단체가 내건 구호가 '문화다양성 협약'과 마찬가지로 '식량농업다양성 협약'이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힘없는 이들과의 연대…부드럽지만 강한 힘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주의 시대와 달리 작금의 '제국'의 시대에는 단순히 자본과 노동을 축으로 해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기존의 계급이라고 지칭할 만한 그룹은 사라지고, 대신 자본의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는 무수한 종류의 다중이 서로 연대하여 성공적인 싸움을 벌일 것이라고, 아니 현재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나는 이러한 네그리와 하트의 진단과 분석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우상으로 군림하는 영화판의 스타들과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그야말로 퇴출 위기에 몰려있는 농부들이 비록 서로 계층적 이해관계를 달리 하지만, 할리우드라고 하는 다국적 거대자본의 횡포 앞에서 어느 시점에서 이들은 전술적으로 연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산술적 셈법만 갖고 접근하는 전술적 연대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이고 취약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제국의 전략은 언제나 '분리와 지배'가 아니었던가. 자본의 회유와 타협 책략 앞에서 전술적 연대가 언제까지 가능할까, 의문이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연대가 또한 가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영화배우 황정민은 1인시위 과정에서 영화판의 또 다른 약자인 스탭진과의 계층적 차이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사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와 권력의 편중은 생명의 리듬을 죽이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영화예술가들은 알고 있다. 그것은 예술의 혼을 돈의 신에게 파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의 진정한 연대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자신들이 그들과 똑같은 약자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땅에 뿌리박은 인간의 노동과 문화가 꽃 피지 못하는 불모의 사회에서 영화인들 제대로 만들 수 있겠는가. 인간의 진정한 문화와 창조성은 물질적 부와 권력을 지니지 않은 풀뿌리 민초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그들이 없으면 나 역시 없다는 공생의 원리에 기초한 연대의식을 우리의 영화인들과 농민이 나누어갖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동막골의 신화(〈웰컴 투 동막골〉)'와 '시골분교 어린이들의 천진함(〈선생 김봉두〉)'이 지니고 있는, 부드럽지만 감염력이 강한 힘을 한국의 영화인들과 농민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지 말라는 법도 없다. 스타는 하늘에 떠 있는 허망한 빛의 허상이 아니라 땅 위의 아픈 자들 눈망울 속에서 빛나는 희망의 전조일 때 진정한 별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렬/영남대학교 교수ㆍ영문학


출처 : 스크린쿼터와한미FTA 원문보기 글쓴이 : 고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