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철학사 6 - 초기불교의 가르침
초기불교의 가르침
출처: 이지수 역, 인도철학 ,민족사
** 붓다의 생애
Gotama-Siddhārtha는 B. C. 563년 북인도 히말라야 기슭에 있는 Kapilavastu에서 Sakya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궁전의 안락과 사치 속에서 성장했다. 16세에 Yasodharā라는 공주와 결혼했고 얼마 후 Rahula라는 이름의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적인 고통을 자각하고서 그 근원을 해소하고자 출가를 결심한다.
출가한 이후 얼마간 고타마는 넓게 편력하면서 스승을 구했다. 이 시기에 그는 육체적인 금욕을 포함한 엄격한 고행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고행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 고행주의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고행주의와 결별한 후에는 독자적 방식으로 고통의 원인과 그것의 소멸을 모색하였다.
그가 선택한 길은 한편으론 고행주의와 금욕, 다른 한편으론 무절제한 쾌락의 추구라는 두 극단을 똑같이 피하면서, 선정을 통한 수련과 자기 분석의 방법이었다. 그는 이것을 통해 마침내 고통의 원인과 그것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명료하게 파악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해서 그는 붓다(Buddha), 즉 ‘깨달은 자’가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 그는 80세(B.C. 483년)에 입적할 때까지 종족․카스트․피부색 등의 지위에 관계없이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유행하였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붓다의 가르침은 종교와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형성시켰고, 그것은 남으로는 스리랑카․미얀마․태국, 북으로는 티베트․중국․한국․일본․몽고로 퍼졌다.
** 고통의 문제에 대한 접근
붓다는 탁월한 지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난해한 철학적 문제보다 고통의 정복에 이르는 행위와 도덕이라는 실천적 문제를 강조하였다. 즉 붓다는 형이상학자가 아니라 윤리적 교사였다. 그에게 가장 긴급한 과제는 사람들을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었다.
붓다는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아 죽어간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화살의 기원이나 본성에 대한 지식이라든가, 혹은 그 활을 쏜 사람이나 맞은 사람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몸으로부터 화살을 뽑아내서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실존이라는 고통의 독화살이 인간에게 관통되었을 때, ‘세계가 영원한가, 유한한가, 신이 있는가, 영혼이 육체와 다른가’ 등등의 형이상학적 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보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탐구는 고통이라는 눈앞에 걸린 긴박한 문제의 해결에 조금도 도움되지 않는다고 붓다는 말한다.
따라서 그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탐닉하는 자는 고통이라는 사실에 눈이 어둡거나, 아니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형이상학적인 약을 먹여 치료되기를 바람으로써 시간을 낭비하는 자라고 생각하였다. 고통과 그것의 치유 문제에 대한 이러한 태도로 미루어, 붓다는 때때로 반형이상학적 실용주의자(Pragmatist)로 불리운다.
** 4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cattāri ariyasaccāni)
석존의 교설은 고통(苦)․일어남(集)․소멸(滅)․길(道)이라는 사성제를 중심으로 한다. 이들 중에서 ‘고통이라는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dukkha-ariyasacca)’란 보편적인 삶의 괴로움을 가리킨다. 붓다는 고통이란 누구라도 간과할 수 없는 보편적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욕망․탐욕․질투․불안․악의․이기심․질병․노쇠․죽음 등은 간과해 버리기에 너무도 명백한 고통들이다.
삶이 고통이라는 붓다의 관찰에 대해, 삶이란 고통뿐 아니라 즐거움으로도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붓다는 삶의 밝은 면을 배제하고 어두운 면만을 강조한 오류를 범했다고 반박할 수 있다. 이러한 반박에 대한 붓다의 답변은, 순간적으로 쾌락처럼 보이는 것도 마침내는 고통의 일종인 권태와 불만으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붓다는 짧은 소견으로 인해 쾌락 속에 고통의 씨앗을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고통 즉 duhkha라는 말은, 흔히 육체적 심리적 아픔이라는 뜻에서 suffering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duhkha는 근본적 의미에 있어서 無常(anitya, anicca)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무상이란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든 존재의 기본 성격이다. 우리는 모든 사물이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사람 안이건 밖이건 영속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붓다에 따르면, 모든 괴로움의 바탕은 바로 이 무상함이다. 그리고 이것의 절정은 우리의 꿈과 희망을 먼지와 재로 변화시키는 죽음 그것이다.
존재를 분석해보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결국 변하지 않고 영구한 세계란 상상의 허구이며 소망적 사고의 산물이다. 무상이란 우리의 감각과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한 실재의 기본적 특징이다. 그리고 무상함이 있는 곳엔 반드시 괴로움이 있기 마련이다.
두 번째의 ‘고통의 일어남이라는 진리(苦集聖諦, dukkhasamudaya-ariyasacca)’란 고통이 우연이나 변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 자체의 씨줄과 날줄을 구성하는 특정한 조건에 의해 생긴다는 것이다. 만일 고통에 원인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을 제거할 방도도 없을 것이다. 모든 현상은, 감각․감정․욕망․충동․질병․노쇠, 그리고 죽음을 포함하여, 어떠한 원인들에 의해 생성된다.
요컨대, 우리가 경험하는 한의 모든 존재는 하나의 거대한 인과적 관계이다. 이 사실은 바로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그치면 저것도 그친다’ 혹은 ‘이 현상은 저 현상에 의존한다’라는 공식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또한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로 달리 표현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다른 것에 의존하여 야기된다는 이 교설을 연기설(緣起說, pratītyasamutpada)이라고 한다. 이것은 고통의 현실이 드러나는 것에 관한 붓다 가르침의 기초일 뿐 아니라, 이후에 발달된 불교의 여러 가지 철학적 학파의 기초이기도 하다. 괴로움이 발생하는 갖가지 조건들을 붓다는 12가지로 구성된 인과의 연쇄(十二緣起)로 표현했다.
1. 무지(avijjā, 無明)
2. 지음(saṅkhārā, 行)
3. 의식(viññāṇa, 識)
4. 육체와 정신(nāmarūpa, 名色)
5. 여섯 영역(saḷāyatana, 六入)
6. 경험(phasso, 觸)
7. 느낌(vedanā, 受)
8. 갈망(taṇhā, 愛)
9. 집착(upādāna, 取)
10. 있음(bhava, 有)
11. 태어남(jāti, 生)
12. 늙음과 죽음(jarāmaraṇa, 老死)
경전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 중에서 처음의 두 요소는 과거의 삶에 관련되고, 3-10요소는 현생에, 그리고 나머지 둘은 내생에 관련된다. 또한 12가지 연쇄는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이다. 마지막의 12번째 요소는 다음 생의 무명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기의 교설에서 중요한 점은 연쇄의 고리는 그 다음에 뒤따르는 것에 대해 필수적 요소이긴 하지만 충분한 것은 못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늙음과 죽음은 무명의 필수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감각적 경험은 갈망의 필수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만일 이상의 연쇄 고리가 필요충분조건이라면, 그것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연쇄에는 그 시초가 없다. 그것은 시간상의 어느 순간에 시작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명에 시작점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붓다는 괴로움의 근원인 무명을 제거하여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근본적 짐은 원죄가 아니라 무명이며, 그것은 지혜와 지식에 의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1)
세 번째 거룩한 진리는 ‘고통의 소멸이라는 거룩한 진리(苦滅聖諦, dukkhanirodha-ariyasacca)’이다. 고통에는 그것의 원인이 있다. 따라서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 고통과 비애와 불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가. 무명이 고통의 근본적 조건이라는 것은 12연기로부터 분명해진다. 따라서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무명과 싸워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무명을 정복하는가? 붓다는 인간은 존재의 본성에 대한 진리를 명료히 이해하고 통찰함으로써 무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바로 이것은 붓다 자신이 발견하고 걸었던 길인 네 번째 진리로서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ariyasacca)’이다. 다시 이들은 다음의 여덟으로 구성된다.
1. 바른 견해(正見, sammādiṭṭhi)
2. 바른 사유(正思惟, sammāsaṅkappa)
3. 바른 말(正語, sammāvācā)
4. 바른 행위(正業, sammākammanta)
5. 바른 삶(正命, sammā-ājīva)
6. 바른 정진(正精進, sammāvāyāma)
7. 바른 마음지킴(正念, sammāsati)
8. 바른 삼매(正定, sammāsamādhi)
이들 가운데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삶의 3가지는 계율(sīla)의 문제에 관련되고, 바른 정진, 바른 마음지킴, 바른 삼매의 3가지는 선정(samādhi)에, 그리고 바른 지혜, 바른 사유의 2가지는 지혜(paññā)에 속한다. 이러한 계․정․혜 三學은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난 삶으로 인간을 인도한다. 그러한 삶은 더 이상 무명의 짐에 수고하지 않은 지혜의 삶이다. 그러한 지혜의 성취가 곧 열반(nibbāna)의 성취이며, 열반을 성취한 사람을 곧 아라한(Arhat)이라고 부른다.
** 초기불교의 과정적 존재론
철학을 실체(substance)와 과정(process), 즉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의 철학으로 나누는 것이 상례이다. 존재론(ontology)이라는 말은 ‘존재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성과 양태에 대한 연구’를 뜻한다.
외견상의 변화와 다양성, 그리고 존재의 다수성 저변에 놓인 불변의 영구적인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존재론을 ‘실체적 존재론(substance ontologies)’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인간 내면이건 외부이건 영구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서 ‘과정적 존재론(processontologies)’ 혹은 ‘양태적 존재론(modal ontologies)’이 있다.
서양에서는 Parmenides, Aristotle, Descartes, Leibniz, Spinoza, Locke, 그리고 Kant의 철학이 실체적 존재론의 몇 가지 예이며, 반면 Heraclitus, Bergson, Whitehead의 철학은 과정적 존재론의 예들이다. 인도의 철학 무대에선 Jainism, Sāṇkhya, Vedānta의 철학이 실체적 존재론을 대표하며, 붓다의 가르침은 과정적 존재론에 기반하고 있다.
붓다의 중심적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보편적인 변화와 무상의 교설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무상하다. 영구히 지속하고 머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태어나서 자라고 소멸하는 것은 실존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사물은 나왔다가 사라진다. 태어남이 있는 곳엔 죽음이 있고, 성장이 있는 곳엔 노쇠가 있다. 만남이 있는 곳엔 헤어짐이 있고, 시작이 있는 곳엔 끝이 있으며, 생성이 있는 곳엔 소멸이 있다. 그러한 관찰에 비추어 붓다는 변화와 무상이란 모든 존재의 기본적 특성이라고 가르쳤다.
보편적 변화와 무상의 교리는 이른바 연기설의 형식으로 귀착된다. 만일 어떤 것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존재한다면 다른 것과의 상호작용이란 불가능하다. 또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곧 서로가 변화를 겪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 영구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는 연기설과 상충된다.
붓다는 연기설을 常住論과 斷滅論의 두 독단적인 극단을 피하는 중도로서 권장했다. 상주론(eternalism)은, 실재가 우리의 경험의 대상일 수 없는 영구 불변의 실체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독단적이다. 단멸론(annihilationism)도 또한 우리의 경험에 반하여 실재가 어떤 자취도 남김없이 소멸되어 버린다는 똑같이 독단적인 교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