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살로메의 철학카페

인도철학사 3 - 베다에서 우파니샤드로의 이행

파르헤지아 2009. 9. 15. 11:07

 ** 베다에서 우빠니샤드로의 이행


  Ṛg-Veda(B.C.15-10세기)에서 Yajur-Veda와 Sāma-Veda와 Ātharva-Veda로 나아가면서, 그리고 Brāhmaṇa(B.C.10-6세기)에로 전환이 가속되면서 신의 위상에 관한 사고의 참신성은 인격신에 대한 냉담함과 인위적인 격식으로 대체된다.


  Upaniṣad(B.C. 6세기)로의 이행 과정에 있어서, Brāhmaṇa 문헌에 나타나는 신관의 전형적인 경향은 제사의 만능화이다. 본래 제사는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거나 혹은 신에게 은혜를 기원하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신 중심의 행위였다. 그러나 제사 의례가 전문화되고 또한 정교해짐에 따라 제사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Brāhmaṇa 문헌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제사 자체의 효력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신들조차도 제사 없이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올바른 제사의 행위이며, 따라서 제사는 우주적 힘을 지녔다고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정태혁, ������인도철학������, pp.101 참조.)

  

  이러한 제사만능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인도철학에 있어서 2가지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사고의 경향이 싹트게 된다. 하나는 우주의 통일적 원리로서의 실재를 나타내는 Brahman 개념의 전개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의 인과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정착이다


  Brahman이란 베다에서도 이미 발견되며, 송가나 기도 내지 주술의 말, 혹은 그 말에 들어 있는 신비한 힘을 뜻했다.1) 이 개념은 베다에서 볼 수 있는 ‘ṛta’라든가 ‘sat'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지만, 동시에 만유와 제신의 배후에 있는 근원적인 실재 혹은 힘을 뜻하기도 하였다.   


  제사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배태된 두 번째 사유의 경향은 행위의 인과율에 대한 믿음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행한 행위는 자연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신의 뜻과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그 결과를 초래한다. 제사 행위로 하여금 그에 합당한 결과를 필연적으로 초래하게끔 하는 이러한 행위의 법칙은 인도철학의 대전제인 karma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되었다. 


    Śatapatha-Brahmaṇa. i. 42. 44.

   이 세상에서 Agni Hotra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올바른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나무를 꺾어서 불에 넣는 자,

   이런 자는 저 세상에서 나무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그를 먹는다.


   이 세상에서 Agni Hotra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올바른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울부짖는 가축을 구워 먹는 자,

   이런 자는 제 세상에서 가축이 인간의 모습을 취해서 그를 먹는다

   

    .......... 중략 .......


   이 세상에서 Agni Hotra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올바른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믿음이 없이 제사를 행하는 자는 믿음 없는 자가 된다.

   반대로 믿음을 가지고 제사를 행하는 자는 믿음으로 이른다.



  * 우빠니샤드 철학의 전개

  베다와 브라흐마나에서 보이기 시작한 세계의 통일적 원리에 대한 사유는 Upaniṣad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베다의 문헌에 나타나는 특수한 성격을 지닌 신들은 현상세계에 머물러 있는 유한한 존재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존재의 궁극적 원리를 추구하는 우빠나샤드 철인들의 마음을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었다.


  우빠니샤드 철인들이 진정으로 추구했던 철학적 사유의 목표는 그것을 앎으로써 다른 모든 것들을 알게 되는 단 하나의 근원적 실재 그 자체였다. 우빠니샤드는 이러한 고대 인도인의 형이상학적 정열의 산물로서, 그 후의 인도철학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우빠니샤드 철학의 가장 큰 업적은 브라흐만에 대한 우주론적인 사변을 넘어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주체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에 있다. 즉,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인 브라흐만이란 다름 아닌 인간의 실재라는 관점 하에서 탐색해 들어갔다. 이러한 탐구의 방향 전환은 종래의 외향적 우주론적 사변으로부터 내향적인 자기성찰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인간의 참자아를 우빠니샤드에서는 Ātman이라고 불렀다.2)   



  * 범아일여 사상의 정착

  우빠니샤드에 이르러 비로소 주목되기 시작한 자아, 즉 Ātman은 어떤 차별성이나 개별성을 내용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자아이다. 이 아트만은 다름 아닌 브라흐만으로서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공동된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유는 외향적인 우주론적 사변과 내향적인 자기성찰이 궁극에 이르러 하나로 회통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계는 하나의 궁극적 실재에 참여하는 것이 되었다. 즉 브라흐만은 우주의 아트만이요 아트만은 인간에 내재하는 있는 브라흐만으로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梵我一如(tad tvam asi, aham brahma asmi)’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우빠니샤드에서 말하는 최고의 진리 즉 jñāna이다. 이러한 jñāna는 지혜란 모든 존재의 바탕에 대한 통찰을 획득한 의식상태이며, 삿뜨(sat, 순수존재)․찟뜨(cit, 순수의식)․아난다(ānanda, 순수희열)로 표현되기도 한다.



    * Chāndogya-Upaniṣad VI.2.1.-4.

    진실로 이 세계는 브라흐만이니,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며,

    그것 없이는 해체되고 말 것이며,

    그 안에서 숨을 쉬도다.

    그러하니 고요히 그것에 대해 명상하라.


      ........ 중략 .......  


   이것은 심장 속에 있는 자아로서,

   [작기로 말할 것 같으면] 쌀알보다 작고

   좁쌀보다 작으며 겨자씨보다도 작다.

   이것은 내 심장 속에 있는 나의 자아로서,

   [크기로 말할 것 같으면] 대지보다도 크고

   허공보다도 크고 하늘보다도 크며

   이들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도 크다


       ......  중략 ......


   나의 심장 안에 있는 나의 자아, 이것은 곧 브라흐만이다




  * 자아의 분석 I, Pañcakośavāda (五藏說)

  범아일여 즉 브라흐만과 아뜨만이 동일하다는 생각이 정착되는 데에는 ‘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반성적 사유의 과정이 수반되었다고 볼 수 있다.


    Kena-Upaniṣad I.3.-4.

   그것은 눈으로 다가갈 수도 없고,

   말로도 들을 수 없으며,

   마음으로도 다가갈 수 없는 것,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실로 그것은 앎과 알지 못함을 초월하니,

   우리는 오로지 우리에게 그것을 이야기해 준 선인들로부터 들었을 뿐이다.



  이러한 사유의 귀결로서 Taitirīya-Upaniṣad (II.2.1.-II.7.1.)에서는 자아를 5가지 층으로 분석하였는데 이를 五藏說이라고 부른다.


  ① annamayakośa; 물질(food, material)로 이루어진 자아를 말한다. 음식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음식으로부터 생겨났으며, 생겨나서는 음식에 의해 살아가고, 다시 생이 끝날 때에는 음식으로 돌아간다.” 이 문구는 가장 낮은 차원의 자아로서 육신이나 그것을 지탱해 주는 음식이 바로 자아라고 여기는 유물론적인 자아관을 반영한다.

 

  ② prāṇamayakośa; 호흡(breath)은 만물에 생기를 부여하는 원천 즉 목숨(life)을 가리킨다. 이것은 바로 생명이 자아라는 관점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자아는 앞에서 언급한 음식으로 이루어진 자아 속에 머문다. 음식을 먹는 까닭은 곧 목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③ manasmayakośa; 세 번째는 마음(mind)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이것은 마음이 바로 자아라는 관점으로, 이것에 따른다면 마음은 목숨보다 본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자아 속에 머물고 있다. 


  ④ vijñānamayakośa; 네 번째는 지성(understanding)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이는 정신 현상 속에 내재하는 지성의 주체가 바로 자아라는 관점으로, 이 역시 앞의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속에 머물고 있다.

 

  ⑤ ānandamayakośa; 다섯 번째는 환희(Bliss)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이것은 지성을 초월한 자아로서 지성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다. 또한 그 안에 어떠한 또 다른 자아도 갖지 않는 궁극적인 존재(sat)이다. 이것은 지성과 마음 그리고 생명과 육신의 토대이다. 이것에 대한 앎은 그 무엇에도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 진리(cit)이며, 존재 자체의 충만한 환희(ānanda)이다.



  * 자아의 분석 II, Caturtha (四位說)

  한편 Chāndogya--Upaniṣad(VIII.2.1.-II.7.1.)라든가 Muṇḍaka-Upaniṣad 등에서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눈에 보이는 자아, 꿈속에서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자아, 숙면의 상태를 유지할 때의 자아, 그것보다 높은 단계의 자아라는 4가지 단계로써 구분하였다.


  ① Jāgarita-sthāna(覺醒位); 일상의 깨어 있는 상태에서 거친 경험을 통해 확인하곤 하는 자아가 이 단계에 속한다.


  ② Svapna-sthāna(夢面位); 꿈을 꾸는 상태를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이며 육신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하며 꿈이라는 미세한 경험을 통해 확인되는 자아이다.


  ③ Suṣupta-sthāna(宿面位); 온갖 차별상이 완전히 사라진 통일적 의식의 상태로서 오로지 자아 그 자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경험이 종식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상의 인식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아만이 빛나는 상태이며 지혜(jñāna)의 단계라고도 부른다.


  ④ Caturtha-sthāna(第四位); 개별적 자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차별의 세계가 한데 융합된 영원한 평화 혹은 지복의 상태이다. 이 단계에서의 자아는 “내적 대상을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외적 대상을 인식하는 것도 아니며, 양자 모두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의식으로는 볼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파악될 수도 없고, 어떠한 차별적 징표도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 상태이다. 따라서 성자들은 이 단계를 다만 ‘네 번째 단계’ 즉 ‘turīya’라 하였다”



  * 轉變說, pariṇāmavāda

  세계의 기원과 발생을 브라흐만의 전변으로 해석하는 견해로서, 브라흐만이 모든 것의 배후에 혹은 그 속에 내재해 있다고 본다.  ⇒ Sāṇkhya, Yoga, Nyāya, Vaiśesika, Mīmāṁsā


   * Chāndogya-Upaniṣad I.3.-4.

   사랑하는 아들아! 태초에 세상은 Sat 그뿐이었고,

   그 밖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생각하였다.

   “내가 다수가 되리라. 내가 번식하리라.”

   그것은 곧 불을 유출하였다.

   그 불이 생각하였다.

   “내가 다수가 되리라. 내가 번식하리라.”

   그 불은 물을 유출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땀흘릴 때에는 불로부터 물이 낳아지는 것이다.

   그 물이 생각하였다.

   “내가 다수가 되리라. 내가 번식하리라.”

   그것은 곧 음식을 유출하였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먹을 것이 많아지는 것이다.

   다시 그러한 Sat가 생각하였다.

   “내가 이들 세 가지 존재에 생명의 자아로서 들어가 명칭과 형태로 전개되리라. 이 세 가지로써 삼중의 복합체로 만들어지리라.”

   그리하여 그 존재는 그들 세 가지에 생명의 자아로서 들어와 이 세상의 온갖 명칭과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삼중의 복합체를 만들었도다.”



  * 假現說, vivartavādā

  세계는 브라흐만이라는 유일의 실재를 근거로 하되 단순히 가상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본다.    ⇒  Advaita-Vedānta


    Chāndogya-Upaniṣad VI.11-12.

   생명인 [아트만이] 떠났을 때 확실히 이 몸은 죽는다.

   그러나 생명인 아트만은 죽는 일이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미세한 [Sat를] 본질로 하고 있다.

   그것만이 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뜨만이다. 너는 그것이다.


    ..... 중략 .....

  

   나의 아들아, 믿어라.

   이 미세한 것, 이 세상의 도든 것은 이 미세한 사트를 본질로 하고 있다.

   그것만이 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트만이다. 너는 그것이다. 

 


-----------------------------------

 1) 브라흐만(梵, brahman, √bṛh, 두꺼워지다, 성장하다, 팽창하다, 전개, 발전, 팽창)

    梵我一如, tat-tvam-asi

 

1) 아트만(我, ātman, √an, 숨을 쉬다, √at, 움직이다, √vā, 불다); 자아,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