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닙니까?
" 넌 왜 동성애자가 됐냐?"
"당신은 왜 이성애자가 됐습니까?" "당신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내 뜻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늙어가고, 회사에서 밀려나는 게 당신 뜻이 아니었던 것처럼...."
"여잘 사랑한 경험이 있냐?"
" 그 전에도 남자라서 사랑한 경험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진우란 남자를 만나고, 경민이란 남잘 만났지만, 그 사람들이 남자라서 만난 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부인을 여자라서 만났습니까? 나는 남자를 사랑한 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우리 다시 보진 말자. 회사에서 부디치면 못본척 하자. 너를 몰랐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법을 보른다."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닙니까?"
노희경의 <슬픈유혹> 중에서 - 우문의 현답같은 사랑에 대화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생일이 다가왔다.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계속 투정부리는 나보다 10살 연상의 그녀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오랫만에 북코너에 들렀다. 법정스님의 "一期一會" 란 법문집을 사려고 했으나 노희경의 수필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란 책이 그녀에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녀에게 책을 주기 전에 먼저 이 책을 다 읽어 본다. 그리고 10여전 내게 처음으로 작가 노희경이 각인된 드라마 "슬픈유혹"의 잊혀지지 않던 대사장면을 써 본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참 사람의 심리를 서늘하게도 잘 표현하는 작가로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내내 나는 극중의 인물과 함께 마음이 아팠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배우 주진모를 단번에 사랑하게 만들었고 소외된 자들의 사랑에 대해 늘 따뜻한 시선을 갖게 만들었다. 사랑을 하는데 무엇 때문이라는 이유가 붙는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매우 남성적이고 잘 생긴 남자 주진모가 동성애자로써 그것도 여성의 역할을 맡아 자신보다 늙고 회사에서는 퇴출될 위기에 놓였음에도 말도 안되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김갑수를 연민으로 바라본다 자신들도 모르게 어느 한순간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소외된 사람만이 느끼는 동질성 이것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그들을 사랑으로 만나게 한 이유였다. 아픈 주진모를 찾아와 그를 간호하다 둘이 나누는 어설픈 키쓰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드라마의 장면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작가 노희경을 생각했다. 참 많이 아팠던 여자로구나.. 그리고 사랑받지 못해 한참을 삶의 언저리를 배회했던 그런 여자로구나 라고 그녀의 수필집을 보면서도 나는 오랫만에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의 언저리 조금은 본 것도 같다. 지난 목요일 제주에 머문 단 하루 김영갑갤러리를 찾았다. 제주가 좋아 제주에 머문 사진작가 김영갑과 무인카페 "오월의 꽃"의 주인장과 나의 동질성은 제주를 본 순간 사랑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숨결이 머문 공간을 단 하루만에 다 둘러보기 위해 나의 하루는 타이트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짜여졌다. 사랑하는 법을 몰라 사랑을 잃고 외로울 사람들을 위해 나의 기억의 편린을 남긴다. 지금 그대의 옆자리가 비어 있어 외로운 것은 그대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얼마나 좋을까 - 이수영 2009년 7월 9일 오후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서
무인카페 <오월의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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